최근까지 우리는 COVID19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유전자를 증폭(polymerase chain reaction, PCR)하거나 바이러스 항원 진단키트(virus antigen diagnos kit)를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적인 분석기술로서 그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환원주의(reductionism)'적 관점에서 발전한 서양식 과학의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명과학의 기본적인 접근 방법은 생명체를 여러 조직(tissue) 혹은 기관(organ)으로 해체하고 다시 이를 관찰할 수 있는 최소 단위 생명체인 세포(cell) 연구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 단위의 구성물들이 생명현상에 따라 각각 어떤 작용기전에 (mechanism of action) 따라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찰, 확인하고 재검증합니다.
즉, 각 기관에서 유래한 세포들을 분리 배양하면서, 다양한 조건에서 실험하여 얻어낸 관찰 결과들을 통해 조직이나 기관의 기능을 이해하고 마지막으로 얻어진 각각의 정보를 통합해서 대상 생명체의 생명현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핵산이라 불리는 DNA와 RNA 혹은 단백질이나 대사물질 등등 세포를 구성하며 또 그 모양이나 기능을 결정하는 분자들로부터 그 세포만이 갖는 특별한 생체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이죠.
COVID19 바이러스를 하나의 세포라고 한다면 PCR 검사는 이 세포들을 분해해서 추출된 RNA 정보를 DNA 정보로 전환시킨 다음 그 DNA를 관찰 가능한 수준까지 증폭시켜서 분석하는 기법이고 (Real time reverse transcription polymerase chain reaction, RT-PCR), 신속항원 진단키트는 세포 분해 등의 과정 없이 그(바이러스) 표면에 존재하는 특이적인 단백체(예, 스파이크 단백질), 그 자체를 항원(antigen)으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진 항체(antibody)를 이용해 우리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발색(키트상에서 줄로 나타나는)되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정확도(accuracy), 특이도(specificity)나 민감도(sensitivity) 등등 구체적인 키트 성능에 대한 이슈를 논외로 한다면, 외부물질 혹은 감염체에 대한 진단(diagnosis)에는 분자생물학적 기법이 매우 탁월한 기술임에는 분명합니다.
또한, DNA 분석은 범인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로 쓰이며(포렌식), 신생아 선천성 대사질환 검사,혈액검사, 호르몬을 검출하는 임신 진단 테스트 혹은 당뇨환자들의 혈당 측정용 테스터기 등 인체유래의 생체분자 분석을 이용한 다양한 검사방법들은 우리의 생활에 밀접하고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럼, 환원주의적 기법으로 제각각 흩어진 조각들을 연구하고 맞추면 생명체를 잘 '이해' 할 수 있을까요?
'가상 실험'을 통해 분자생물학적 연구를 이용한 신약개발 초기 연구 단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단순한 실험 프로토콜의 나열은 지루할 수 있어 가상의 주인공을 만들고 소설 형식을 빌어 묘사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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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한 논문도 게재 승인이 났고, 영혼을 갈아 넣은 길고 긴박사과정이 거의 끝나간다고 생각할 무렵 교수님의 긴급 부름에 '프로젝트 미팅'을 가졌다. 이제 막 박사과정에 입학한 A도 앉아있었다. 내년 말 국가의 큰 프로젝트가 론칭되는데 이름하여'뉴 노멀 암 끝장내기 사업'이란다.
그 과제에 선정되려면 관련 연구 성과가 있어야 (논문. 혹은 특허)한다고 하시며 '우리는 뼈로 전이되는 폐암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겠다고 하셨다."일반 암세포주 (cell line, 지속적으로 배양할 수 있도록 유전자 조작된 암세포)를 이용하는 실험은 다들 하니까, 점수가 높은 저널에 투고하려면 폐암 환자로부터 떼어낸 폐암 조직에서 즉시 분리한 세포(primary cell)로 실험하려고 한다. 잘 되면 마우스로 폐암 뼈 전이 모델 실험도 하고 환자 시료들 수집해서 검증도.." 하실 거라며 이미 폐암 수술로 유명하신 대학병원 쪽 흉부외과 교수님과 논의도 되었다고 하셨다. 수술 날짜 맞춰 수술실 옆에 액체질소통을 들고 대기하다가 절제한 폐암 조직을 받아 오기로 했다고.
응? 갑자기? 우리 실험실은 근육 발생과 분화 연구 실험실인데? 그동안 받았던 실험실 연구비도 다 되어가고 마침 내년엔 연구과제가 종료되는 해여서 A를 비롯한 석사급 연구원들 급여도 지급해야 하고,무리하게 도입한 분석장비 유지비와 밀린 재료비도 갚아야 하기에 무조건 해내야 한단다.
"응 그리고 이거는 A 졸업을 위한 학위논문 주제로 할 거니까 선배인 네가 잘 도와줘(?)" 아.. 이거 하다 졸업하고 해외로 포스닥(post-doctor, 박사 후 과정) 유학나가면 주저자(논문에 기여한 연구자 중 제1 저자)는 고사하고 공동 주저자도 날아가겠구나 하는 불길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이거 진행 잘 안되면 졸업 어려운 거 알지?"
아닌 줄 알면서도,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학위를 거는농담 같지도 않은 압박에 욱 하며 그냥 '끝장'을 내고 싶어 노트북만 쳐다보던고개를 들어 교수님 두 눈을 보는 순간,'뒷걸음치는 소를 회피하는 마우스의 행동연구'로 우리 실험실을 먹여 살리신 선배님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전이암 조직을 실험군으로 쓰려면 양성 암조직이랑정상 폐 조직도 대조군으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순간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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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도 정상 폐 조직을 어떻게 확보하는지 궁금한데요." 자신의 연구주제이니 만큼 심각하게 듣던 A도 눈빛을 반짝이며 덩달아 질문했다.
순간 당황한 눈빛의 교수님은 대답 대신 어디론가 전화했다.
[생체실험은 보통 대조군(control group 혹은 comparison group)과 시험군(test group 혹은 experiment group)으로 나뉘어 실행하고, 가급적이면 똑같은 조건 (condition)과 환경(environment)하에 실시하도록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드라마틱한 실험 결과가 의도적인 결과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가 없다.]
뭐, 베테랑인 교수님도 가끔은 의도치 않게 결과 중심의 실험을 생각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일단 정상인의 폐조직을 구할 수는 없으니까, 암 환자 폐조직만 쓸 수 있는데 보통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바로 옆 영역으로 전이되었을 것을 가정해서 발생 부위보다 크게 절제한다네. 그러니까 종양의 중심 부위하고 최대한 멀리 떨어진 아직 암세포가 없는 부위 두 군데를 사용하기로 했어."
흉부외과 교수님과 통화한 내용을 들려주셔서 끄덕이긴 했지만, 그래도 암환자의 조직을 대조군으로 사용하는 게 맞는 건지 긴가민가 했다. 게다가 정상인의 폐조직도 없는데..
아무튼, 암 연구가 전무했던 우리들은 매주 관련 논문들을 정리해서 공부한 내용과 접근기술에 대한 공부를 하는 '저널 클럽'시간을 가졌고 A와 나는 실험 프로토콜(protocol, 실험 순서)을 준비했다.
드디어 수술 당일, 긴장하며 대기하고 있던 우리는 즉시 받은 조직을 가져와 생리식염수(saline, 신체의 체액을 0.9% NaCl(염화나트륨) 용액으로 가정해서 만듦)가 담긴 투명 플라스틱 플레이트에 얹고 메스를 들어 계획했던 대로 거뭇하게 변한 종양 부위와 비교적 선홍색 빛이 선명한 조직 끝부분을 떼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선배님!! 메스가 안 들어가요.. 무리하면 부러질 것 같아요."
"내가 해볼게."
응? 헉! 종양 한가운데는 그야말로 돌덩이였고 (calcification, 석회화 현상이 일어남), 불현듯 담배를 많이 피운 환자라는 사전 정보가 떠올랐다. 담뱃갑에 경고 사진으로만 봤는데.. 손에 닿은 그 딱딱한 느낌은 바로 그날 저녁 애증 하던 담배와 라이터를 미련 없이 버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타산지석(石)
"일단 그 옆을 잘라내어 쓰자.. 교수님께는 내가 보고할게."
우여곡절 끝에 두 조직을 확보, 준비한 프로토콜에 따라 진짜 폐암 조직의 '최측근 세포'와 멀리 떨어진(그래 봤자 몇 cm임)'정상 같은 세포'들을 분리 배양해서 며칠 동안 그 수를 늘려가며 일부는 질소탱크 (nitrogen tank) 보존하고 나머지는 계속 수를 늘려 분자생물학 실험이 가능할 수준의 양을 확보했다.
애초의 계획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을 떨쳐내고,
사람 생조직을 받아하는 첫 실험인데 이 정도면 잘했지 스스로 위로하며.. 교수님과 다음 미팅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