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가르고 태아가 여러 마리가 들어있는 태반을 꺼내 식염수가 들어있는 플레이트(투명한 플라스틱 접시)에 옮깁니다.
그리고 태아 한 마리씩 꺼내어 수술용 가위로 태아의 목을 잘라 죽음을 확인한 뒤에 두피도 벗기고 뇌도 제거하고 (지금 실험용 프로토콜이 아니라 일반적인 글로 묘사하는 게더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입니다...) 순수하게 남은 두개골에서 줄기세포가 모여있는 부위와 어느 정도 뼈로 분화된 부위를 잘라 각각 다른 튜브에 옮겨 담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보고 있는 거지?
충격을 감추느라 손에 땀을 쥐고 있는데, 필자보다 일찍 실험실에 입문한 동기생이 뒤돌아보며, 태아들이 죽을 때 잠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며칠간 비슷한 류의 실험들을 지켜보면서, 뒤에서 남몰래 계속 이들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기도를 하고 있는 필자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미는 그저 태아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생명의 기초도 모르는 내가 다른 동물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아닌 것이라 생각해서 세포생물학 기반으로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쪽으로 조금씩 아주 의도적으로 옮겼습니다.
그로부터 6년 뒤 우연히 학회에서 뵙게 된 연자분의 초빙으로 독일연구소에서 시신경 단백체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빛이 있을 때와 어두울 때 눈의 수정체 아래에 있는 레티나층 (여러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시신경 구획)의 단백질들을 프로파일링(profiling, 여러 개를 동시에 동정하는 기술) 하고 두 조건에서 구분되는 특별한 단백질을 찾는 실험이었는데, 실험용 마우스는 눈이 너무 작아서 보다 많은 시료 확보를 위해 적출된 돼지의 눈들을 가지고 실험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어두운 조건 하에 있던 시료 내의 단백질들을 손상되지 않은 채로 확보하려면 암전 상태에서 진행해야 하는데 당연히 앞이 보이지 않기에,
밀폐된 공간에서
적외선 등(빨간 등) 아래에서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자발적으로 갇힌 채로 빨간 등 아래 알루미늄 포일에 감겨있던 병 속에서 꺼내서 마주하는 거대한 눈알들을 TT. 그것도 입체 현미경으로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실험해야 합니다.
게다가, 레티나층은 수정체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니 구체를 주사기로 구멍을 내어 내압을 낮추고 수정체 제거 후 시료를 확보하게 됩니다.. 석사 입학 때의 느낌이 데자뷔로 밀려왔지만, 무섭거나 말거나 단백체들이 빠르게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과정은 신속하게 진행되어 버립니다.
기도라는 것을 할 사이도 없이
심지어 진행했던 실험 결과가 좋아서 (TT) 결국 살아있는 특정 유전자 마우스의 레티나를 연구하는 주제로 이어지며 부득이 그 환원주의적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산화탄소로 질식시킨 다음 목을 잘라 주검을 확인하고 지정된 수술대에서 실험하는 엄격한 관리체계였는데, 역시나 마지막에는 눈을 마주 봐야 하는 참 곤혹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정말 그 희생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 정성껏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미안하다..
지금도 많은 연구자분들이 동물실험들을 하고 계시고, 그중에는 속앓이 하며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박사과정 때의 지도교수님은 수의학 전공자이신데 학위과정 동안 적어도 천마리 정도는 희생시킨 것 같다고 하시며 속으로 무척 괴로웠다고 지나가듯이 고백하셨습니다. (동물을 치료하는 전공이셨으니 괴로움이 더하셨으리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이유는 수 천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