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 꾸는 나 Sep 29. 2021

응, 할 수 있어~!

아이는 나의 걱정보다 더 잘 자라고 있었다.

엄마, 몇 밤 자면 엄마 회사 안 가?”


직장을 다닐 때 둘째는 자기 전, 엄마가 몇 밤을 자면 회사에 안 가는지 질문을 했다. 늘 같은 질문이었지만 나는 늘 새로운 질문인 듯 대답하며 아이와 남은 날 수를 세었다. 아이의 질문은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고도 엄마가 몇 밤을 자면 회사에 가는지 물었다. 이제부터 엄마가 학교에도 데려다주고, 학교 끝날 때 기다리기도 할 거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아이는 믿기지 않는 듯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그제야 아이는 엄마의 출근을 묻지 않았다.


이사를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둘째의 기침 틱이 시작됐다. 아이는 학교에서 생각보다 어려운 것을 배우지 않는다며 안도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든 듯했다. 급식이 맵다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날도 있었다. 학교는 어려운 것을 배운다고 했던 첫째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아이는 등굣길에 늘 공부 걱정을 쏟아냈다. 8살 불안이 높았던 아이에게 초등학교 생활이 얼마나 낯설고, 두렵고, 힘든 것이었는지 초등학교 입학 후 ADHD 진단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에 대해 알고 나니 고민이 깊어졌다.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많았지만 서두르면 안 되었다. 먼저 아이의 불안을 낮추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고, 선택하고 나서도 후회하는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했다. 학교생활에서 자주 부딪히게 될 어려움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하교 후, 학교 앞 문구점에 들리는 것을 좋아했다. 보기만 하는 것으로 약속을 하고 들어가지만 아이는 늘 하나씩 사달라고 떼를 썼다. 어떨 땐 사주기도 하고, 어떨 땐 사주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기회다 싶었다. 아이에게 1000원을 주고 그 안에서 마음껏 고를 수 있게 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전날 집에 가서 바로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다음날 1000원을 받기 위해 집에 오면 곧장 숙제를 했다. 조건이 붙으니 2~3시간 걸리던 숙제는 1시간으로 줄었다. 1000원의 효과는 매우 컸다. 수많은 물건 중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의 선택을 정해진 시간 내에 해야 했다. 1000원 안에서 골라야 하니 계산능력도 필요했다. 오늘 꼭 사지 않아도 내일 살 수 있다는 걸 경험하니 아이는 조금씩 떼를 쓰지 않게 됐다.


불량식품을 사고 나면 곧장 집 앞 놀이터에 갔다. 언니 없는 둘째와 엄마만의 시간이었다. 내게 간식을 맡기고 하늘로 올라갈 듯 신나게 그네를 탔다. 어떤 날은 엄마와 높이 올라가기 내기도 했다. 자신이 더 높이 올라갈 때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엄마, 엄마도 열심히 연습하면 높이 올라갈 수 있어요~” 라며 날 웃음 짓게 했다. 언니 없는 엄마와의 온전한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아이의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 5분밖에 되지 않는다며 속상함도 토로했지만,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것도 배운다고 했다. 선생님은 친절하고, 모르는 것도 잘 가르쳐주고, 상냥하게 말해준다고 했다. 그 사이 단짝 친구도 생겨 함께 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는 조금씩 편안해졌다.


따스한 바람이 부는 봄과 뜨거운 여름이 지났다. 매일 등하교를 하며 나는 아이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둘만의 추억도 쌓았다. 함께한 시간만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엄마도, 불안했던 아이도 괜찮아지고 있었다.


얼마 전, 아이는 물었다. “엄마, 나 2학년 되면 엄마가 회사에 다시 간다고 했잖아~몇 밤 자면 2학년 되는 거야?”. 마음이 덜컹했다. 나는 “어~그랬지.. 근데 아직 잘 모르겠어~” 얼버무렸다. 아이는 엄마가 회사에 가면 언니가 기다리는지, 학원은 어디를 가야 하는지, 집에 가면 숙제를 해야 하는지 등 피할 수 없는 질문을 했다. 혹시나 엄마가 다시 회사를 간다는 것에 더 불안해할까 봐, 틱이 더 심해질까 다시 복직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은 맞닥뜨려야 했다.


엄마는 불안한 마음으로 “보물아, 엄마가 회사에 가도 혼자 잘할 수 있겠어?”라고 물었지만, 아이는 괜찮은 표정으로 “엄마가 회사를 안 가면 좋지만, 가도 괜찮아. 나, 할 수 있어~!” 아이는 나의 걱정보다 더 잘 자라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