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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호 Mar 21. 2024

업무를 벗어난 관계

2024년 3월 21일 목요일

어제는 20년 이상 함께 일했던 협력회사 직원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오랜 세월 함께 일하면서 내가 많이 힘들게 했던 친구들이다. 물론 업무상이었지만 때로는 너무 심하게 이 친구들을 대했을 때도 있었기에 마음 한구석에 늘 미안한 마음은 물론 내 행동에 대한 자책감이 남아 있었다.


이런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퇴직 시에 이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어야 했지만 전화통화만 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늦었지만 그 자리가 일 년이 지난 시점에 마련되었고, 어제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업무의 틀에서 벗어나 순수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나를 보자마자 '형님'이라고 부르며 밝게 인사하는 이 친구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표정이나 모든 행동에 있어 나를 편한 사람으로 대하는 그 모습에 너무 감사했다. 과거 나로 인해 감정이 상하거나 섭섭한 일들이 많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이들의 관대함과 포용력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


술자리가 끝나갈 때 즈음 한 친구가 최소 분기에 한 번은 보자며 말을 건넨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말에서 흘러나오는 온기가 느껴져 농담을 섞어 일 년에 두 번만 보자며 답한다.


이렇게 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창 앞을 보고 달려가고 있는 40대의 이 친구들에게 내가 어떤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본다. 나의 삶이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도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제의 술자리로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가 더욱 묵직하게 느껴진다. 회사는 떠났지만 여전히 만나고 있는 선후배와 동료가 있고 나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 나의 삶이 가족을 넘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될 수 있기에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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