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에서 삶의 벗으로
2024년 3월 12일 화요일
어제는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부서 모임이 있었다. 회사에 재직 중인 팀장님과 후배, 그리고 회사를 떠난 임원 분과 동기 등으로 구성된 모임이며, 내가 작년에 퇴직하면서 재직자 보다 퇴직자의 수가 많아졌다.
오랜 세월 같은 부서에서 험난한 여정을 함께했던 분들이고 늘 우리는 서로를 전우라고 표현해 왔다. 수익창출을 위해 밤낮없이 일을 했고 심지어 주말이나 휴가 중에도 일이 생기면 기꺼이 업무에 임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전우애가 쌓였고 하나가 되었다.
물론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가 될 때까지 크고 작은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모임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 험난한 과정을 치열하게 헤쳐나가는 과정에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와 믿음이 쌓였기에 가능했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인간적인 신뢰와 믿음은 퇴직 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 일례로 선배 임원 분이 퇴직하신 후에 나는 더 인간적으로 그분을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직위체계로 맺어진 관계에서 벗어나 과거의 공통된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순수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인간적인 신뢰와 믿음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퇴직을 계기로 이 모임은 나에게 있어 어떠한 이해관계도 얽혀 있지 않은 온전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되었으며,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고 또한 삶을 나누어 갈 수 있는 소중한 인연들의 단단한 묶음이 되었다. 직장 동료에서 전우로, 전우에서 삶의 벗으로의 변화이다.
직장생활이 지옥이 되는 것은 대부분 사람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퇴직을 하고 나면 통상 그 만남이 이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퇴직 이후에 오랜 세월 함께한 인연들이 허무하게 소멸되지 않고, 삶의 벗이라는 더욱 따뜻한 관계가 이어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며칠 전 회사 동료와 마찬가지인 협력사 직원이 퇴직 후 처음으로 연락을 해왔다.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만나자고 한다. 나를 기억해 주고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며, 이런 인연과 만남들이 24년이라는 직장생활이 나에게 남긴 큰 의미와 가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