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열등하게 느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쟁적 구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상대적 가치를 추구하게 하는 이러한 환경과 흐름은 삶을 어디로 이끌어가는가? 과연 어떤 유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인가?
아마도 성취감, 자기만족, 우월감, 물질적/시간적 여유 또는 자유 등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나 쾌감은 얼마나 갈까? 그리고 그것들은 삶에 있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상상을 해본다. 상대적 가치가 중심이 된 삶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그 마지막 숨은 과연 편안할 수 있을까? 만약 그 마지막 호흡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허무함과 후회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삶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결국 그 가치란 내가 아닌 타인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삶 속에서 나와 연결된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가 그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높고 낮음, 많고 적음, 강함과 약함 등의 상대적 기준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그 우월성을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하는 틀에 묶이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아무런 가치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 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결국 세상적으로 열등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그 개연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낮아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낮아져야만, 비로소 나와 타인의 삶 속에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낮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낮아진다는 것은 가족을 포함하여 타인의 요구나 결핍을 살피고, 그들의 삶이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 되기를 바라는 진정성 있는 마음과 나누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타인의 삶을 내 삶처럼 대하는 삶. 낮아진다는 것은 결국 높아지는 것이며, 나와 타인의 삶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위대하고 고귀한 일이다.
[마태복음 20:25-28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의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