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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공간, 그리고 불편함

2025년 02월 08일 토요일

by 손영호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특정 공간에서 사람들로 인해 짜증 나거나 불편했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유사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불편함이 자신을 괴롭힐 것이며, 이는 분명 스스로에 대한 가해가 된다.


일본에서 생활해 보면 '실례합니다(失礼します/시쯔레이시마스)'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Excuse me’라는 표현이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것과 같다.


어제 본 일본영화 ‘앙:단팥 인생 이야기(あん. Sweet Red Bean Paste)’에서는 한 할머니가 단팥빵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이 할머니는 늘 새벽에 출근을 하였고, 가게에 들어갈 때 ‘실례합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일하는 가게인데 그저 아침 인사를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실례합니다’라고 하며 들어갈까? 나는 이것을 공간에 대한 인식차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누군가가 있는 공간을 어떤 공간으로 볼 것이냐? 내가 어떤 공간에 대한 권리가 있더라도, 누군가가 그 공간에 있는 상황이라면 자신이 타인의 공간으로 들어간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어제오늘, 가족들 사이에 사람들 때문에 불편했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나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불편에 집중하기보다는, 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상대의 불편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타인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의 불편함을 우선시 하면 불편한 상황만 보이기 마련이기에 일상생활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반대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선시 되면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이때 사람과 상황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어떤 조건에서도 늘 배려하는 자세로 사람과 공간을 대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과 행동이 온전히 변화되고, 일상도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채움으로써 비로소 내가 채워지는 것들이 있기에 그렇다.


나는 누군가와 공유되는 모든 공간에 있어, 나의 권리를 내려놓으려 한다. 그 내려놓음을 통해, 그 공간이 온전히 나의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비우고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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