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부(夫婦)

2025년 8월 7일 목요일

by 손영호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며 맺는 인간관계 중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바로 배우자와의 관계이다. 특히 인생 후반에 더욱 그렇다.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시절이 지나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배우자와 함께하는 시간도 늘어난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좋다면 행복하고 훌륭한 인생 후반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지 않다면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훌륭한 삶이란 좋은 열매를 끊임없이 맺는 삶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맺는 열매 중 가장 큰 열매, 그리고 다른 열매를 맺기 위한 열매가 바로 가정의 행복이다.


그 행복이란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좋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중심에 부부(夫婦)가 있다.


문제는 이 열매가 어느 한순간의 노력으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농사를 짓듯 오랜 세월 땀 흘리고, 고민하고, 노력하고, 인내해야 비로소 맺을 수 있는 그런 열매인 것이다.


돈만 벌어다 준다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가족이란, 부부란 그런 관계가 아니다. 그 관계는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비로소 바로 서게 된다.


돈이 중심이 된 책임과 역할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어느 날 ‘지금까지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 왔는데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이 또한 정답은 없다. 그 길은 부부(夫婦)가 함께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내와의 관계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 것은 사회활동과 육아로 정신이 없던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시절이었다. 물론, 계기가 있었다. 머리에 혹이 생겨 죽을 고비를 한번 넘기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그즈음에 영국에 주재원으로 나가게 되었고, 영국에서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을 고민하고 실행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주 2-3회 헬스클럽에서 함께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산책, 골프, 예술공연 관람 등으로 확대되었다. 물론 온 가족이 할 수 있는 여행이나 놀이공원,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 관람 등의 활동도 많았다.


그렇게 보낸 4년이라는 시간은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에게 있어 하나의 ‘Life-changing event(삶을 바꾸는 사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어떤 제약이 있어도 꾸준하게 유지한 것은 ‘저녁 산책’이었다. 산책은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만, 아내와의 둘 만의 시간이며 대화의 시간이기에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상의 시간이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50세라는 나이에 퇴직을 할 수 있었고, 인생 후반이 순조롭게 시작되고 흘러가고 있다.


인생 후반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단언하건대, 배우자와의 넓고 깊은 공감(共感)과 유대(紐帶)가 가장 중요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값진 열매들이 맺히게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몰입(沒入)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