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때때로 두려움을 아주 다정하게 녹인다.
어느 날, 작고 촉촉한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다가왔다.
연이라는 이름의 천사를 만나고, 나는 두려움 끝에서 사랑을 배웠다.
사랑은 때때로, 두려움을 아주 다정하게 녹인다. ♡
다 큰 성인인 나에게, 어느 날 가족이 생겼다. 내 두 팔로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작고, 촉촉한 눈동자에 눈물자국을 달고 다니는 아이. 이름은 '연이'
반려견, 아니 — 그냥 내 동생이다.
애완견이라는 말로는 연이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사실 나는 강아지가 정말 오래도록 무서웠다. 8살쯤이었을까. 등굣길에 따라오던 강아지가 갑자기 달려들었던 기억... 그날 이후로 강아지의 꼬물거리는 몸만 봐도
도망가기 일쑤였다.
단 한 번의 경험이었지만, 두려움은 깊고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강아지를 피하면 피할수록 그 감정은 더 커졌고, 결국 나는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머니도 강아지를 무서워하셨다. 나는 그 감정을 자연스레 물려받았다. 어릴 땐 세상의 모든 기준이 보호자였으니까. 강아지를 보면 몸이 먼저 긴장했고, 짖는 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식은땀이 날 만큼 긴장되고, 스스로도 이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작고 따뜻한 생명체를 좋아해 보고 싶다는 마음. 눈빛 하나로 마음을 나누고, 작은 등을 마음 편하게 쓰다듬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모든 강아지가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란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첫걸음이,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그러다 연이를 만났다. 작은 몸집에 하얀 털, 귀 뒤와 몸 곳곳에 갈색 무늬를 가진 채로. 촉촉한 눈가에는 늘 눈물자국이 남아있어 괜히 더 마음이 가는 아이. 연이는 분명 슬픈 게 아닌데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게 만드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만난 날, 연이는 조심스레 다가와 내 손을 핥았다. 작은 발로 통통 치면서 반가움을 표현했지만, 그 다정한 표현마저 나는 당황스럽고 두려워 피하고 싶었다.
연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나는 자꾸 놀라게 됐다.
연이는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아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이다. 누구에게나 다정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연이는 특별히 나에게만 더 빠른 속도로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연이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마음으로, 오직 ‘자기 사람’을 따랐다. 어느 날은 친구가 집에 놀러 와 연이가 정말 좋아하던 고기 간식을 내밀며 산책을 가자고 했지만 연이는 나 없이는, 현관문으로 밖으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다.
산책 도중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우면, 연이는 그 자리 그대로 서서 나를 기다렸다.
그 조용하고도 단단한 신뢰가 가슴 깊은 곳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그때 알았다. 연이는 나를 ‘믿는 존재’로 여긴다는 걸.
그러고 보면 첫날 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온 연이는. 마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어쩌면 연이는 내가 얼마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본능적으로 느꼈는지도 모른다. 연이가 그렇게 다가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무서워했겠지?
지금도, 그 첫날의 연이의 따뜻한 시작이 참 고맙다.
연이와 가까워지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긴 호흡이 필요했다. 지금은 단둘이 산책을 나가지만, 그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변화가 아니다.
리드 줄을 쥐고 걷는 이 시간이 오기까지
나는 작고 용기 있는 시도들이 반복해 왔다.
한 뼘 한 뼘 조심스럽게....
셋이 함께 산책을 나갈 때면 나는 일부러 “오늘은 내가 리드줄 잡을게” 하고 말하곤 했다. 누군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연습을 반복하면, 내 마음이 편했다. 마치 초보운전 시절 조수석에 누군가 앉으면 든든한 그 느낌처럼.
그와 동시에, 나는 왜 강아지가 무서웠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감정은 단순히 '무서움'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거슬리는 감정을 느끼면 “짜증 나!”라고 투박하게 표현하는 것과 비슷했다. 무서움을 조금 깊이 들여다보니, 나는 ‘예측불가능성’을 두려워했다. 그 뾰족한 송곳니, 갑작스러운 움직임, 어딘가에서 날 공격할 수 있겠지 하는 상상.
내가 만들고 키워낸 공포였다.
밤마다 강형욱, 설채현 선생님의 영상을 찾아봤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어느새 온통 강아지 교육 영상으로 가득 찼다.
나는 지식으로 감정을 설득하려 애썼고, 반려견에 대한 이론으로 스스로를 무장한 채 연이에게 간단한 훈련도 시도해 봤다.
그리고 놀랍게도, 연이는 곧잘 따라주었다.
그 모습이 내겐 위로였고, 그렇게 내 마음속 깊고 조용했던 무서움들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며 돌아보면, 나는 연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참 다양한 방식으로 애써왔구나 싶다.
지금의 나는 연이를 보며 웃는다. 말투도 변했다. 반 톤 이상 높인 목소리로 "연이야~ 예쁘다~ 잘한다~ 오구오구 착하지~" 하이톤으로 부르게 되고, 작은 행동 하나에도 애정을 표현하게 되었다.
사랑을 주다 보면, 내가 더 다정해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랑을 많이 받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이를 통해 알게 됐다.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따뜻해진다는 것을.
연이는 하루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작은 생명이다.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고 밥도 꼭 제시간에 챙겨줘야 한다. 노는 것도 물론 나와 함께한다.
잠깐의 게으름으로도 이 아이는 불편해질 수 있다. 그래서 연이를 돌보는 마음은, 단순한 책임감 이상이었다.
어쩌면 아주 조금은,
나를 키워준 엄마의 마음과도 닮아 있었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손길을 건네고 있다.
두려움을 이겨낸 자리에,
사랑이 조용히 깃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당신에게도
두려움을 녹여준 특별한 경험이 있나요?
아마 그건....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을지도 몰라요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