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할 수 있는 용기
질문은,
지금의 나를 나-답-게 만들었다.
하리
어릴 때 나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무언가를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고 곧잘 물었다.
"왜요? 그건 왜 그런 거예요?"
궁금한 건 숨기지 않고 질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배움의 출발점’에 서 있었다.
나는 이 기억이 선명하다.
프로야구를 즐겨보시던 아빠 옆에 초등학교 저학년인 내가
찰싹 붙어서 앉아 묻는다.
“아빠, 저 분은 왜 뛰어요? 지금은 왜 아웃이 된 거예요? 볼은 뭐에요? 스트라이크는요?”
아빠는, 내가 어떤 질문을 하여도 무시하지 않으셨다.
“그만 좀 물어봐”, “그냥 그런 거야”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듣지 않고 자랐다.
단어 하나하나를 풀어 설명해주셨고, 그 시간들이 내 생각의 뿌리가 되어줬다.
그래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질문이 부정당하는 순간이, 너무나 숨막혔던 이유.
사춘기가 지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이 사회에선 “왜?”보다 “네”가 더 중요하다는 걸.
질문은 반항처럼 보였고,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아이들이 ‘바른 아이’로 여겨졌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한동안 질문 대신 수용에 익숙해졌다.
몰라도 아는 척하고, 손을 드는 게 눈치 보이는 시기.
그래서 나는 조용히, 이해 못 해도 넘기는 법을 배웠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진 경험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아 진심으로 “이건 왜 이렇게 하는 거죠?”라고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반항이라 여겼다. 그들이 봐왔던 이들은 늘 명령과 지시에 “네”라고 응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나를 두고 ‘사차원’이라 말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진짜로 이유를 알고 싶었을 뿐인데.
“이건 관습적인 방식이에요. 그래야 윗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거든요.”
이런 답이라도 괜찮았다. 꼭 이상적인 대답이 아니어도 단지 이유를 알고 싶었고, 납득하고 싶었다.
입사 초반 3년은 그냥 “넵”만 하며 지냈다.
말수도 줄었고, 외향적이던 내가 내향형처럼 변해버렸다. 사무실 안에서는.
내가 나를 부정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당황시키지 않도록, 질문의 방향을 부드럽게 다듬어보면 어떨까하는..
말끝을 낮추고, 먼저 공감한 다음 이유를 묻는 식으로.
“그 방식에도 이유가 있으시겠죠. 그런데 혹시 이런 방식은 어떨까요?”
그들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유를 묻는다
얼마 전, 《공부머리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안에서 핀란드 교육 이야기를 접했다.
“가르치지 않을수록 더 많이 배운다.”
지나친 주입식 사교육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고 토론하며 성장하는 방식을 책에서 강조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
‘왜?’라고 묻는 능력이야말로 공부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가슴 한쪽이 묘하게 울컥했다.
맞아, 나는 그런 아이였는데.
틀렸던 게 아니었구나.
억눌렀던 질문들이 하나둘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결국 내가 던졌던 모든 질문은,
나를 알아가고 세상을 해석해가는 공부였던 셈이다.
누군가에겐 말대꾸처럼 들렸을지 몰라도,
나에겐 ‘생각하는 연습’이었다.
최근 새로운 부서로 전입해, 10년 이상 이어져오던 사업을 맡게 되었다.
이미 굳어진 틀 안에서 당연하게 진행되던 일들. 하지만 나는 궁금했다.
“왜 이렇게 하는 걸까? 이 보고서를 수요 부서는 어떻게 활용하는 걸까?”
그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 우리는 보고서의 방향성과 활용도를 점검할 수 있었다.
단순히 형식을 채우는 것을 넘어서, 이 사업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
앞으로도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생겼다.
질문은 흐름을 끊지 않았다. 오히려 본질을 살렸다.
내가 던진 ‘왜?’는 조직이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작은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배려 깊게 지지해주는 팀원들을 만나,
내 질문의 가치를 인정받는 경험을 했다. 그게 무엇보다도 다행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묻는다.
책에게도, 때로는 나 자신에게도.
‘왜 이 선택을 했을까?’
‘왜 이 문장이 마음에 남았을까?’
‘왜 지금 이 기분이 드는 걸까?’
질문은 나를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성장하게 만든다.
나는 결국 ‘왜?’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도 던졌다.
왜 나는 그렇게 질문하는 나를 숨겼을까?
왜 그 질문을 두려워했을까?
그 과정을 지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왜’는 나를 흔들리게 했지만, 동시에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걸.
당신의 ‘왜?’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혹시 너무 오래, 마음속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진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