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바늘 앞에서, 나는 감정 대신 태도를 골랐다
최근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동료와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일경험도 많고, 팀 안에서 가장 섬세하고 배려심 깊은 동료가 주된 역할을 맡아주고 있었는데,
요즘 그 동료가 너무 지쳐 보여서
자연스럽게 내가 역할을 넘겨받게 됐다.
사실 나도 이 프로젝트는 처음이었다.
아직 낯선 점도 많았고,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해나가는 중이었다.
동료가 있었기에 새로움이 주는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고 있었다. 보고서 작성부터 발표자료까지 말이다.
후에 동료로부터 전해들은건데
보고서 납품이 프로젝트의 목적이었지만,
발주업체 담당자의 사정으로 부탁을 받아
우리가 발표자료를 만들게 된 것이라 하였다.
발주업체 담당자와
주된 소통 역할을 넘겨받은 다음 날.
그 분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점심시간 10분 전이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실까요?”
나는 점심을 먹고,
내 안의 중심을 가다듬은 뒤에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기 전,
중간관리자님께 살짝 말했다.
“혹시 통화 중에 날카로운 말이 오더라도,
저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 팀 검토 후 말씀드리겠다고 할게요.”
사실 그 말은 나에게 하는 자기암시이기도 했다.
전화를 걸면서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미리 단단하게 조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미리 메모장을 켜두었다.
전화로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걸 그냥 머릿속으로만 정리하다 보면
말이 감정과 얽혀 뇌에 남아버리는 걸 안다.
그건 나한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말과 감정을 분리하기로 했다.
듣는 동시에 적는 것,
그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전화는 오랜 시간 진행되었다.
내 왼쪽 귀가 뜨끈해질 때까지 말이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PPT 거의 고쳐진 거 없던데요?
큰 발표 해보신 적 없어요?” (바늘)
그 이외도 무례한 말투로
우리 팀을 깎아내리듯 지적하는 말들을 내놓으셨다.
“컨펌하는 중간관리자가 누구에요?
그 분은 이런 경험도 없으시대요?“ (바늘)
“너무 전문적이니 일반적인 사람들도 이해하도록 써주셔야죠“(바늘)
분명 이전엔 전문적인 방향으로 써달라고 했지만,
본인도 누군가에게 핀잔받은 것을 바탕으로 말을 바꾸는 듯 했다.
본인이 느낀 불쾌한 감정마저 그대로 나에게 전가하듯이 쏘아붙이셨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옛 말이 떠오른 순간이다.
부탁하는 입장에서 군림하는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툭—
말 한 줄이 나를 긁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다.
아, 바늘이구나.
그 사람이 나에게 내려놓은 바늘.
나는 그걸 줍지 않기로 했다.
감정으로 응수하지 않고,
내용만 듣고, 정리해서 넘기기로 했다.
“아, 흐름이 끊긴다고 느껴지셨군요.
네, 그 부분도 팀에 전달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얼이 빠졌지만,
곧 내 동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분 원래 좀 깐깐하세요.
사업 구조에 대한 불만도 있으신 것 같고…
죄책감가지지 마세요.”
맞다.
이건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그분이 겪고 있는 복잡한 감정들이
그저 나를 통해 흘러나온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오늘 그 전화를 내 동료가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지쳐 있는 그 사람이
이 말을 들었다면 펑펑 울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받았고,
나는 버텼고,
지금 우리 팀 안에서는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날 오후, 중간관리자님이 이렇게 말해주셨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타격감 놉!.”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내려앉게 했다.
누군가 내 편이라는 것.
같은 장면을 같은 온도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나를 숨 쉬게 했다.
나는 오늘,
한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고,
동료를 대신해 감정공격을 방어했고,
내 안의 태도를 지켰다.
그날, 나는 바늘을 줍지 않았다.
그 바늘은 그 사람의 것이니까.
나는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그게,
그날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 “한 번 지나봤기에, 두 번째는 더 여유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