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응모작: 성냥팔이 소녀
창문이 덜컹거린다. 하얀 식탁보를 깔고 저녁 식사를 차리던 엄마는 창밖을 내다본다. 아이는 아직 오지 않았다. 바람에 날린 눈발이 창문에 얼어붙는다. 묵은해를 보내는 날, 거리엔 두꺼운 외투를 걸친 사람들이 어깨를 움츠린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엄마는 난로에 장작을 던져 넣는다. 그리고 지독한 추위 속에서도 거리를 헤매고 다닐 아이를 기다린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아이. 엄마가 일하러 나가 있는 동안 혼자 있는 아이. 온종일 짓궂은 장난을 치며 거리를 돌아다닌다. 눈발도 휘날리는데 오지 않는 아이를 엄마는 몹시 걱정했다. 무슨 못된 짓을 하고 다니지 않을까 하고.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야 문이 삐꺽 소리를 낸다. 아이가 무언가를 휘두르며 들어온다. 엄마는 얼른 아이를 품에 안는다. 모자 위에 내린 눈이 녹아 물방울이 맺혔다. 장갑을 끼고 있어도 아이의 손은 얼음처럼 차갑다.
“아이고, 우리 아들 얼마나 추웠을까. 잘 놀았니?”
“재미있었어. 집으로 오는 길에 이걸 뺏었거든.”
아이는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흔든다.
“아니, 이 낡은 신발 한 짝? 여자 어른 신발인데. 어디서 주웠니?”
아이는 손을 들어 바깥을 가리키며 전리품을 쟁취한 듯 으쓱대며 말한다.
“저기 쪼끄만 애, 성냥 팔이 있잖아. 커다란 신발 한 짝만 끌고 있길래 뺏어 왔어.”
“뭐라고? 그럼 그 앤 신발 한 짝이 없잖아. 이 추운데.”
“아냐, 한 짝만 끌고 있었다니까. 그래서 뺏었어. 장난감 배 만들래.”
엄마는 아이의 손에서 신발을 뺏는다. 신발은 오래된 듯 낡아서 뒤축이 너덜거렸다. 순간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거리에서 성냥 파는 어린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열 살 난 아들아이보다 더 작았다. 여덟 살은 되었을까? 그 아이는 모자도 쓰지 않았고 외투도 입지 않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뺨 한쪽에 퍼런 멍 자국도 있었다. 성냥갑을 든 조그마한 손에 울긋불긋 얼음이 박혀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성냥 사주세요’, 기어들어 가듯 겨우 말하던 아이. 앞치마에 담긴 성냥갑은 몇 갑이나 팔았을까. 끔찍하게 춥고 배고파 보이던 어린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여자애 옆을 사람들이 스치듯 지나갈 때 성냥 몇 갑을 사주면서 물었다.
“집이 어디니? 엄마는?”
성냥팔이 여자애는 그냥 고개만 도리질했다.
아이의 엄마는 창밖을 본다. 손에는 아들애가 뺏은 낡은 신발 한 짝이 들려 있다. 날이 어두워지자 바람은 더 세차지고 눈발도 굵어졌다. 너무나 가여워 보였던 성냥 파는 어린 여자애의 얼굴이 자꾸 눈앞을 가렸다. 이 지독한 추위에 장난꾸러기 아들애한테 한 짝 남은 신발까지 뺏겼다. 엄마는 아들을 돌아본다. 무서운 얼굴을 하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아들의 손을 잡는다.
“가자. 그 애가 있던 곳에.”
“엄마, 왜 그래? 나 배고파.”
“그 애한테 신발부터 돌려주고 오자.”
“싫어, 싫어, 거지 계집애한테 가는 거 싫어.”
아빠 없이 홀로 키우다 보니 열 살이나 되어도 아들애는 아기처럼 떼를 쓴다. 엄마한테서 빠져나간 아이는 식탁 위에 차려놓은 구이가 된 거위의 다리를 잡으려 했다. 엄마는 빠르게 아이의 손을 잡아끌면서 단호하게 말한다.
“그 애를 찾아야 해, 빨리.”
달아나지 못하게 아이의 손을 꽉 잡고 거리로 나섰다. 엄마의 한쪽 손엔 커다랗고 낡은 신발 한 짝이 들려 있었다. 낡아빠진 어른 신발을 끌고 다니며 성냥을 팔 어린 소녀를 생각하자 엄마는 몹시 슬퍼졌다.
성냥 팔이 여자애는 눈을 맞으며 길 한쪽에 멍하니 서 있었다.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집의 창문 앞이었다.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즐겁게 하는 모습이 창밖으로 보였다. 엄마는 여자아이의 발을 보았다. 눈이 조금씩 쌓이는 얼어붙은 땅바닥에 맨발로 서 있었다. 발은 동상이 걸려 얼룩덜룩했다.
여자아이는 천천히 창문에서 떨어져 나와 집과 집 사이, 골목의 벽과 벽 사이에 웅크리며 주저앉았다. 추위와 배고픔에 벌벌 떨면서 한쪽 벽 가까이 기어갔다. 두 손으로 꽁꽁 언 발을 감쌌다. 그 모습을 본 아이의 엄마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손을 잡은 아들아이를 돌아보는데 아이는 어느새 엄마의 손에서 빠져나가 저만큼 집으로 뛰어가 버렸다.
성냥팔이 아이는 앞치마에 담긴 성냥갑에서 성냥 하나를 꺼내어 벽에다 긋자 성냥은 탁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성냥팔이 아이는 불꽃 위로 손을 올리고 발도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 불꽃이 파르르 피어오르다가 눈발에 금방 꺼졌다. 눈발은 점점 더 굵어졌다. 아이의 까맣고 긴 머리 위에 눈이 하얗게 쌓였고 아이의 손끝엔 타버린 성냥만 남았다. 아이는 성냥을 하나씩 꺼내 벽에 긋기를 반복했다. 벽은 불을 붙여주었지만, 눈발로부터 불꽃을 보호하진 못했다. 불은 금방 꺼졌다. 벽은 그냥 두껍고 차가운 벽일 뿐이었다.
엄마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내일 떠오를 새해의 태양 아래 집 없는 어린 여자애는 벽에 기대어 뻣뻣하게 얼어 죽을 게 분명해 보였다. 엄마는 벽을 바라보았다. 지붕이 되어주지 못한 그 차디찬 벽을. 엄마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신발만 돌려주고 돌아서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여자아이가 마지막 성냥을 벽에 그어 불을 붙였다. 약한 불빛 속에 엄마가 나타났는지 아이가 자꾸 엄마, 엄마하고 불렀다. 벽을 향해 가느다랗게 엄마를 불렀다. 장난꾸러기 아이의 엄마는 성냥 파는 여자애가 엄마라고 부르는 벽을 보았다. 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떤 풍경도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는 벽을 가리고 여자애 바로 앞에 마주 섰다. 성냥 파는 아이의 차디찬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뻣뻣해진 몸을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뒤로 돌아 무릎을 굽혀 눈발처럼 가벼운 어린 여자아이를 등에 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