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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Mar 30. 2022

[어느저자 / 가을호] 첫째주, 고감래 : 결

결 「명사」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 

결 「명사」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성결. 

결 「명사」 ‘겨울’의 준말. 

결 「의존 명사」 ‘때’, ‘사이’, ‘짬’의 뜻을 나타내는 말. 

결(決) ‘결하다’의 어근. 

결(缺) 「명사」 빠져서 부족함. 

결(結) 「명사」 『문학』 어떤 글의 체계를 기승전결로 구분할 때의 넷째 단계. 전체 구성의 끝을 맺는다. 

결(結) 「명사」 『불교』 몸과 마음을 결박하여 자유를 얻지 못하게 하는 번뇌.  

 모든 사고는 언어에 제한되고, 언어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의 언어를 나만의 백과사전으로 정리하는 일은 나의 세계를 개관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리고 필자는 종종 ‘결이 맞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니까 오늘, 당신에게 열어 보일 나의 세계는 ‘결’이다. 




 결의 다양한 의미 중 첫 번째는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다. 그 ‘따위’에 마음을 멋대로 넣어본다.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상황을 마주치며 마음은 다치기도 한다. 베인 마음이 어느새 굳은살처럼 딱딱해져 이제는 무던해지기도 하고, 여전히 무른 구석은 찔리는 대로 따끔하기도 하다. 이렇듯 나무와 돌, 우리의 살갗 뿐 아니라 마음 또한 굳고 무른 부분이 존재한다. 그런 구석들이 모여서는 포개어져 층을 이루는데, 이를 켜를 짓는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이 지은 켜를 우리는 성격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그런 켜가 만들어 낸 무늬가 결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결이 확고해지기 때문일까. 남은 건 아집뿐일까 두렵다. 본론으로 돌아가 결의 사전적 의미 중 두 번째는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이다. 결국 결의 두 가지 의미는 내게 하나로 혼용되고 있다. 

 코끝은 시려도 손끝은 온기가 남아있던 20살 결, ‘결이 맞다’는 말을 처음 꺼낸 것 같다. 결이 맞는 이를 가까이 둔 적은 총 세 번인데, 여전히 결이 맞는 이는 어떤 이냐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결이 맞는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도 참 힘이 드는 일이다. 같이 있으면 재밌고 좋다는 말은 사어처럼 건조하기만 하고, 살아있는 언어로 그대로 설명하려니 길고도 지루한 이야기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를 지치게 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결국 ‘결이 맞는다는 건 결이 맞는다는 거지.’ 라는 순환론적 오류를 꺼내든다. 그 순환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도록 나의 결이 알려준 동의어로는 ‘영혼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 결대로 엇박 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느낀 바를 조금 짧게 간추려보면, 아무 것도 없이 둘의 존재만으로 웃음을 만들 수 있는 것, 그 사이에 타인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만의 이야기가 가득해지는 것, 감출 수 없던 불안정함을 완전한 척 꾸미다 안정되고 마는 것,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책임만 지던 이가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싶어 하는 것, 시간과 나이나 성별 같은 만들어져있던 다양한 지표들의 무의미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이를 만나는 것은 마치 운명과 같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결이 운명을 빗대는 말은 아니다. 결을 맞대보는 일은 누군가 정해둔 것처럼 딱 들어맞는 존재와 순식간에 빠져드는 그런 운명적인 과정이 아닌, 살아온 세월이 남겨둔 흔적이 베인 자신을 타인의 흔적과 하나씩 맞대어보며 들어맞는 곳에는 놀라움과 감사함을 남기고, 조금씩 틀어진 곳에는 그 흔적이 가진 의미를 알아가며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그런지도 모르다 시간이 흘러 알았고, 그 다음에는 아리송해하며 무언가에 쫓기듯 휩쓸려 다니다 흘려보냈다. 무언가를 떠나보낼 때면 외면으로 일관해 감정의 동요를 잠재웠는데, 그때는 그러지 못하자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무언가 결한 채로 한동안을 보냈다. 인생이란 소설의 결을 놓친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뒤로 찾아온 결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 맞이하였다. 

 당신은 나와 다른 언어를 쓰고 있을지 몰라도, 그 세계에도 나의 ‘결’과 같은 것이 분명 존재할 겁니다. 여기까지 읽어 내리며 이미 떠오른 존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련할 수도, 고마울지도, 혹은 창피할지도 아니면 미안할지도 또는 증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결을 맞이하던 때, 당신은 어땠나요.   


from. 고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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