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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Mar 16. 2022

[ 가을호] 김라면 : 오늘만 비둘기를 수십마리 봤다.

구구 구. 책상 서랍 안에서 비둘기가 작은 울음을 뱉었다. 승언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날아갈 힘도 없는 새가 처연하게 그를 바라봤다. 이제 가야 해. 승언은 비둘기의 새카만 눈을 보며 쓰게 웃었다. 아무것도 모를 텐데. 방 밖에서 룸메이트의 노성이 날아들었다. 정말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며칠, 승언의 집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룸메이트가 임시 보호를 자처한 덕에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집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승언도 몇 시간에 한 번씩 우유를 먹이는 일을 돕곤 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터라, 룸메이트는 자신의 시간을 내던지며 그들을 돌보고 있었다.


본래 그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곤 했다. 집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고, 이번처럼 어미에게 버려진 고양이가 나타나면 돌보기도 했다. 학교 내의 고양이 보호 동아리 소속이었고, 거기에서도 꽤 중요한 역할을 맡아 열렬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도 많이 울어?”

“응. 아직 아기여서 그런가. 그래도 짜잔. 배가 볼록하지? 우유는 잘 먹네.”


룸메이트가 아기 고양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승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장 보러 가려고?”

“응. 약속도 있고. 필요한 거 있어?”

“응. 그럼 나중에 올 때, 이것 좀 사다 줄래?” 


룸메이트가 건네는 종이를 받아들고, 승언은 집을 나섰다. 종이에는 분유, 물티슈 따위의 것들이 적혀있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투명한 유리문이 열리고, 못 보던 것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비좁은 주차선 뒤쪽에 엉킨 자전거들. 그리고 그사이의 회색 물체. 승언은 가까이 다가가 물체를 바라봤다. 물체가 뒷걸음질 쳤다. 자전거 바퀴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한 채 눈을 깜박이는 그것은 비둘기였다. 회색 비둘기. 날개를 펼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몸을 웅크린 채 승언만 바라보는 비둘기. 비둘기가 날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일이야 흔하므로, 승언은 금방 발걸음을 돌렸다. 자신이 오래도록 보고 있어 봐야, 비둘기의 휴식 시간만 방해할 뿐이니까.


약속 장소 앞에 서 있는데, 비둘기가 보였다. 떼 지어 광장에 서 있었고, 사람들이 걸어와도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 피했다가 다시 원래 그 자리로 돌아왔다. 건널목을 건너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도 그의 눈앞에는 비둘기 한 마리가 보였다. 위태롭게 차도와 인도를 오가는 비둘기. 그들은 날갯짓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도심을 누비고 있었다.


“ …원래 이렇게 비둘기가 많았던가?” 

“어휴. 바퀴벌레보다 더 많을걸. 진짜 싫다. 빨리 가자.” 


승언의 멍한 질문에 친구가 답했다. 승언은 그의 걸음을 쫓으며 주변의 비둘기를 한 번씩 돌아봤다. 느긋했고, 가끔 빠른 걸음으로 걸었고, 날갯짓이라도 하면 한 두 번 씩 지나가던 사람들의 야유가 들렸다. 어휴, 아. 으악.과 같은 소리가.


“저 날갯짓 한 번에 병균이 후드득 떨어진대. 엄청 지저분한 동물이야.” 


친구가 그만 보고 얼른 오라며 손짓했다. 친구와의 즐거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장을 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늘은 어느새 어둑해져 있었고, 승언은 오늘의 저녁 담당이었기에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달칵. 승언의 몸짓에 주차장의 불이 들어오고, 자전거 거치대에 숨어있던 무언가도 움찔하고 움직였다.


 승언의 시선이 다시 비둘기에게 닿았다.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승언은 비둘기에게 다가갔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았음에도 비둘기는 그 자리 그대로 꼼짝하지 않았다. 다소곳이 앉아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승언을 바라볼 뿐이었다. 



승언은 결국 녀석을 안아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룸메이트라면 뭐든 알 것이라는 생각에 데리고 왔는데, 룸메이트는 잠시 나갔는지 없고, 고양이 두 마리만 거실에 있었다. 승언은 짐을 거실에 내려놓고, 비둘기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마땅히 놓을 곳이 없어 서랍 아래 칸을 비우고 비둘기를 놓았다. 비둘기는 얕게 구구, 하는 소리를 냈다. 붉은 눈이 처연하게 승언을 바라봤다. 비둘기를 살피던 승언은 비둘기 날개 안쪽의 상처를 보고 동물보호센터 번호를 검색해 키패드에 눌렀다. 동물병원도, 센터도, 119에도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모두 ‘일반 비둘기는 유해 조류이기에 치료할 수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냥 그렇게 풀어주거나, 간단한 응급처치만 하라고. 어찌할 바를 몰라 승언은 비둘기를 서랍에 두었다. 자전거 거치대 아래에 있을 때처럼 비둘기는 걷지도 날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오늘 저녁은… 으악! 저게 뭐야?”

“비둘기가….” “뭐야, 잘못 날아들어 온 거면 빨리 쫓아내야지. 왜 내버려 두고 있어?” 

“비둘기가 다쳐서….” 

“쟤네 벌레 많은 거 몰라?”


룸메이트가 숨을 고르며 와다다 쏘아붙였다. 비둘기의 몸에 있는 병균의 수,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갖가지 이야기가 흘러가기에 승언은 그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했다. 


“다쳐서 데리고 왔어. 나으면 놓아줄게.” 

“너는, 다친 쥐를 발견하면 그 쥐도 데리고 올 거야? 바퀴벌레도?”



승언은 비둘기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아주 잠시간 서랍 속에 있던 비둘기가 승언의 품에서 구구, 하고 울었다. 아직 온기가 있는 비둘기를 안고서 하염없이 걸었다. 사람도, 비둘기도, 도시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걷고서야 승언은 멈춰 섰다. 숲이었다. 잡초가 돋아나고, 나무도 우거진 숲. 비둘기를 내려놓았다. 비둘기는 구구, 하고 울었다. 승언은 뒤돌아서 뛰었다. 사람도, 비둘기도, 도시도 나타날 때까지. 


비둘기를 놓아주고 돌아오는 길에, 승언은 비둘기를 보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사람들을 어떻게든 헤치고, 아등바등 끼어들어 그들이 짓밟고 간 삼각김밥을 먹으려 애쓰는 비둘기를. 



<끝.>  


from.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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