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느 저자 Jun 19. 2022

[가을호] 둘째주, 은희 : 애씀 그 후,


학창 시절 때 나는 누군가와의 관계에 애썼던 아이였다. 친구들과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일보다 나를 두고 점심을 먹으러 가면 어떡하지, 아무도 나와 짝을 안 해주면 어떡하지, 누구도 내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에 더 초점이 맞춰있었다. 매일같이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었음에도 그들과 나 사이에는 넘지 못할 벽이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벽이 학생의 치기 어린 신경전이었든 아니면 미련한 열등감이었든, 불안한 관계를 이어가려 스스로 애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 불안감은 유독 생일이 다가올수록 더 커지곤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먼저 다가가거나, 짝을 지을 때 먼저 말을 거는 것과 다르게 생일에는 친구들의 눈치를 봤고 나아가 가족들의 눈치를 봤다. 제일 간단한 해결 방법은 먼저 제안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가족들과 생일을 보내는 것일 테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쓸모없는 자존심을 버릴 수 없었다. 생일이 다가올수록 내가 부정당하는 몹쓸 기분에 잠식당해, 남은 건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일뿐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렇게 애썼던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져 연락도 하지 않는 남이 되었다. 불안감이 불편함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고, 불편함은 졸업이라는 좋은 핑계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애쓰고 혼자 상처받고 결국 혼자 인연을 포기해버린 어리석은 아이였다. 그 어리석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후에도 계속됐다. 나는 스쳐 가는 수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했고, 친구라는 깊은 관계에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질 수 없는 관계는 존재했고, 상대방이 아무리 나의 관심을 원해도 끌리지 않는 관계 또한 존재했다.


그렇게 몇 번의 노력, 몇 번의 애씀, 몇 번의 집착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애초에 관계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관계든 적당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지만 애씀은 그저 미련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




며칠 전, 초등학생 때 흔히 말하던 ‘단짝 친구’를 만났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작은 오해로 인해 사이가 멀어졌던 친구였는데, 우연히 SNS로 연락이 닿아 근 15년 만에 만나게 됐다. 어색할 줄 알았던 만남은 오히려 기나긴 공백으로 빈틈없이 채워졌고, 짧은 만남 후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발을 돌렸다. 괜스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밤길을 걸으며 지금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니, 인연이랑 정말 어떻게 흐를지 아무도 모르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에겐 어릴 적 친구가 평생 친구라는 틀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곁에 남아 머물고 있다. 학창 시절 스치던 인연이 지금은 누구보다 깊게 얽혀있기도, 못난 모습을 보아왔음에도 멀리서 응원해주기도, 거리도 나이도 상관없이 공감대를 피우기도, 작은 공통점 하나로 온종일 웃고 떠들기도 한다. 이 형태들은 때론 모양을 바꾸기도 그 수가 많아지기도 적어지기도 하며 일정함을 유지하지는 않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내가 애씀이라는 미련 없이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강물과 같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나라는 샘물에 머물다가 강물에 흘러가기도, 흘러간 물은 다시 비가 되어 돌아오기도 아니면 새로운 강물이 흘러오기도 하는 것이라고. 이처럼 복잡한 관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라는 샘물을 꿋꿋하게 지키는 일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온 강물이 한편에 머물며 나의 일부분이 되기도, 잠시 반짝이는 윤슬이 되어 머물러가기도, 떠나간 강물이 다시 한번 흘러들어오기도 하는 인생 속에서 나는 그저 나답게 존재하고 받아들이며 떠나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from.은희

작가의 이전글 가을호 두번째 이야기,"담배와 사슬, 그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