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셋째주, 하랑소년 : 지식IN

겨울호 세번째 주제 : 친절

by 어느 저자

“친~절~ 친절은 힘들어~ 친~절~ 친절은 힘들어~”


내가 그 단어를 되뇌이며 타이핑을 하니 내 옆의 친구가 노래를 개사해 불렀다. 그러게, 친절은 힘들다. 타인이 필요로 하는 무엇인가를 주거나,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 친절을 베푸는 것은 꽤 무거운 시간과 노력을 요하지만, 베풂을 받으면 이상하리만큼 깃털마냥 가볍게 날아가버리곤 한다. 어떨 때는 얇게 세상에 도포된 듯 하면서도, 그 얇은 만큼도 닿지 않아 퍼석함을 느낄 때도 있다. 이상한 자리에 뜬금없이 놓여있기도, 어울리지 않는 곳에 화려하게 있기도 하며, 꼭 있어야 할 곳에 아주 적게 놓여있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어떠한 것을 원하는 지 궁금해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타인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나의 것을 흔쾌히 떼어 낼 수 있는 용기를 요한다. 그러니 친절은 베푸는 사람의 이타적인 마음, 즉 사랑에서 비롯되는 “진심”일 것이고, 그것이 작든 크든 간에 두 손에 소중히 받아든 사람은 그날 하루, 아니 단 몇 분 몇 초라도 기분이 좋고 편안할 것이다.


그러나, 친절이 마냥 그렇게 순수하게 존재하지 않기도, 더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하다. 가끔은 친절의 존재에는 목적이 있는 듯 하다. 누군가에겐 돈이고, 누군가에겐 사랑이며, 누군가에겐 방어. 나는 어렸을 때 스스로가 어떠한 현자인 줄 알았다. 천사나 보살과 같은 존재이다가 사랑을 베풀며 인류를 구제하라 명을 받은 것이라면? 하지만 결국 그 대단해보이던 나의 친절도 어떠한 방어였으며 동시에 회피였다. 더이상 상처를 받고싶지 않아하는 아주 작은 나의 내면을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가 날 싫어하는게 두려워, 내가 먼저 베풀면 그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누가 날 싫어할 지 모르니 나를 갉아내어 모두를 사랑하자,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사람이 어떠한 것을 필요로 하는지, 그것을 제공하면 아주 친절한 것이리라. 이게 바로, 내가 노력하는 사랑일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절은 이타적인 동시에 이기적인 성질을 가졌지만 결국 나를 위하지도 타인을 위하지도 못했다. 소중하게 여기던 친구와 다퉈 결국 화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마음이 여려 더더욱 벽을 가지고 있던 친구였다. 나는 어쩌면 그 마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사실은 재단하고 심지어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날도 그랬다. 그 마음에 상처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아 나는 어떠한 사실을 숨기며 그 친구의 문제를 나 스스로 해결하려했고, 그 친구는 오히려 나의 행동에 상처를 받았었다. 그리고, 친절이라 믿었던 자만이 가져온 비극에 나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다양한 형태와 색을 가진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은 생김새에 따라 행동을 다르게 만든다. 나의 사랑과 그에서 비롯한 친절이 그러했다. 본디 친절이라는 것이 내 마음이 탄탄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향한 마음도 탄탄하지 않아, 얇은 유리면마냥 이리저리 깨지며 날카로운 표면을 들이미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며, 동시에 “내가 가진건 사랑이야”라는 핑계로 다가갔던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을까?


친절도, 사랑도, 정말 어렵다. 세상이 ‘지식IN’ 같을 수는 없을까? 무언가 필요하다고 누군가 말하면, 그 사람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제공하면, 그 사람이 나한테 일정량의 사랑이나 온기를 줬으면 좋겠다. 그래, 그 친구에게도 언젠가 나에게 도와달라 손을 뻗을 수 있게 바로 옆에 든든히 서있는 게 좋았을 텐데. 어쭙잖게 행동하기보다는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아주었을 텐데.


30년 된 사이좋은 어머니 아버지도 아직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해 괜히 투덜거리는 것을 본다. 그러나 서로가 어떤 것을 원하고 상대가 어떤 면에서 도와주었으면 하는 것을 의논하신다. ’당신이 퇴근 때 사오는 그 타르트가 참 맛있어. 그것 좀 사다 줄래?’, ‘이야, 이렇게 추운 데 뜨거운 국물에 정종 한 잔 먹으니까 참 좋다.’ 그게 친절의 가장 끝 아닐까? 짐작하기보다는 손을 잡아주는 것. 상대방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 이야기 할 용기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 용기를 흔쾌히 온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것. 그렇다면 그것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꽤 무겁게 나에게 자리할 테니.


그러니 나를 더 알차고 무겁게 만든 뒤에 친절이라는 것을 취해야 겠다. 어쭙잖은 사랑으로 얇게 빚어진 친절을 무기처럼 지니지 말아야 겠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듯 스스로 자만하여 무섭게 다가가지 않아야 겠다. 내 주변을 위해 매일 아침 피부에 한 겹 얇게 두르는 정도, 내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랑으로 담백하면서도 묵묵히 옆에 있는 정도, 딱 그 정도만.



from.하랑소년




이전 10화[겨울호] 둘째주, 하랑소년: Shape of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