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셋째주, 하다 : 연결된 선(善)

겨울호 세번째 주제 : 친절

by 어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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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따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교단에 서 있었던 시절이 생각이 나곤 합니다. 떨어지는 낙엽내음이 유독 그 향수를 짙게 만든것 같습니다. 수많은 소우주들이 공존하는 교실 안에서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오로지 그 순간에만 머물고 싶다는 사색에 잠기기 일 수 였습니다. 그때마다 다시 두눈을 부릅뜨고 한 번 더 세심하게 아이들을 바라봤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저에게 있어서 교사란 무척이나 버겁고 때로는 자책감에 휩싸이게 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의 일상적인 인사나 감사 인사가 어느새 그 마음 위로 녹아들어서 결국 떼어낼 수 없는 애증의 자리로 남았습니다. 웃음이 가득했던 기억들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도 아쉬웠던 순간들이 갑작스럽게 훅하니 마음에 얹힐 때면 글로 적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꽤 오래전 이야기라 몇 부분이 생략되어 조금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기억을 더듬거리면서 써봅니다.

당시 저는 교단에 선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침 조회를 할 때면 손끝에서부터 저린 떨림을 느꼈습니다. 동료 선생님께서 설렘도 살아있는 증거라며 충분히 즐겨보려고 하셨지만 그때의 저는 아직도 저를 잘 다독이지 못했습니다. 저조차도 다독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들을 다독이냐며 스스로 다그쳤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에 앉아 있는 이 앙증맞은 아이들이 저의 작은 말 한마디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무엇보다도 앞섰습니다. 이제 막 17살이 된 아이들은 제가 기침을 할 때나 혹은 비속어와 비슷한 단어들이 나올 때. 자지러질 듯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첫날에는 당황해서 맥없이 ‘ 조용히 하자’를 외쳤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웃음이 한껏 피어난 안개꽃처럼 산뜻함을 줘서 그저 그 웃음이 멈출 때까지 그 소리를 들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저는 그 웃음 때문에 유난히 저림이 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날은 특히 공지할 것이 많아서 해야 할 말을 계속해서 연습하면서 갔던 기억이 납니다. 교무실에서 학년부장선생님의 아침조회가 끝나고 우리 반 아침조회를 하러 교실까지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교실 문을 젖혀서 들어가 보니, 아이들이 어수선하게 있었고 그 중심에는 두 아이가 다투고 있었습니다. 아니 일방적으로 한 아이가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성희와 민아였습니다.

“ 야 말 좀 해보라고, 너 왜 자꾸 나 무시해 ?” 라고 민아가 외쳤습니다.
“ ...” 성희는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 지금도 봐,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한번쯤은 ..” 라고 민아가 소리쳤습니다.
“야야 선생님 오셨어”라고 그제야 날 발견한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이들을 앉히고 빠르게 종례를 끝낸 후, 민아와 성희를 데리고 상담실로 갔습니다. 자초지종 이유를 물으니, 민아는 초창기 매번 혼자 있는 성희가 안쓰러워서 챙겨줬는데, 반응도 없고 고맙다는 말도 없으니 점점 멀리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합창대회 인원이 부족해서 자초지종 부탁했더니 성희가 무표정으로 ‘싫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 화가 나 쌓인 게 툭 하고 터졌다고 말했습니다. 그에 반해 성희는 다른 변명 없이 자기가 잘못했다고 말만 했습니다. 다만 본인이 굳이 친절을 베풀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지요.

그 당시에는 저는 어린 마음에 둘을 억지로 화해를 시키고 상담을 마무리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어른이 아이들의 화해에 직접 나서서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과거의 저는 그저 그 둘이 눈앞에서 화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왜인지 싸움보다도 성희의 마지막 멘트에 꽂혔었는데, 어쩌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친절을 굳이 베풀 필요가 있는가’

과거의 저는 사실 친절이 종종 벅차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친절이 여러 변수를 안고 있는 불완전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해서 제가 친절이라고 느끼지 않는 경우도 이에 포함되지요. 이런 경우를 ‘넘겨짚은 친절’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의 시선이 상대방을 넘겨짚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친절’도 그 변수안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학생에게 어떠한 친절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으니, 아예 친절을 안 베푸는 것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도 주입식 교육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뭐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속삭였습니다.

하물며 저는 버스를 탈 때, 기사님께서 먼저 인사를 해주시면 그 말에 행운이라도 깃들어 있는 듯 그 날 하루를 행복감에 가득한 채로 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우연히 마주친 이웃 주민분들과 인사를 할 때면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혹은 지난번에는 제가 휴대전화기를 잃어버렸는데 (요즘 종종 깜빡합니다.) 누군가가 주웠다는 소식과 직접 가져다 드린다는 말에 세상에 소속되어 있음을 더 나아가 함께하고 있음을 느껴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일기를 적어내려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그 아이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 친절이 무궁무진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졌음은 틀림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에 던지는 제 삶의 여유랄까요? 그리고 누군가는 제 여유를 통해서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힘이 또 다른 여유를 만들어 또 다른 누군가가 힘을 얻는 선순환이 반복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떠한 근거 없는 저의 신념이기에 이것만을 가지고 성희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커갈수록 점점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가치관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비교적 그간 나온 근거들을 이용해서 지도했지만 이러한 가치관의 문제는 특히나 조심해서 말해야 할 필요를 알기에 고민을 많이 하다가 포기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저는 퇴직을 한 후에 이 글을 쓸 때까지도 마땅한 말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어려운 것을 보면, 배움의 끝이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아마 그 당시에 서툴게 메일을 보냈던 것 같은데, 내용이 기억이 잘 안나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었다는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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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에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희뿌연 하늘에서 막 갓 태어난 눈송이들은 올해도 여김 없이 내리는구나. 이 눈송이들은 어느새 나와 함께 자라, 점점 설렘이 아닌 걱정거리가 된 듯하다. 옛날에는 눈이 오면 다 같이 창문에 붙어서 꽤 흥미롭게 쳐다봤던 것 같은데..‘아 오늘 뭔 생각으로 차를 끌고 왔더라. 지하철이나 타고 가야겠네’라는 생각을 잠깐 한 뒤, 그저 눈길만 창문을 슥 쳐다본 후 다시 눈은 컴퓨터 화면을 향한다.

퇴근 시간이 되도록 멈추지 않은 이 눈들은 꽤 쌓여서 밟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난다. 천천히 밟혀 가는 눈들을 보니, 문득 그 옛날 담임선생님이 떠오른다. 이름이 뭐였더라. 꽤 따스했는데,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 선생님은 항상 웃으셨다. 왜 저렇게 웃지? 할 정도로 웃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천진난만해 보여서 종종 누가 학생이고 선생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학창시절의 나는 꽤 조급한 삶을 살았다. 나 스스로가 만든 짐들을 짊어지고 사느라 여유가 없었다. 나를 책임지기도 버거운데, 가족들도 어느 순간 내 발등 위에 앉아 있었고 이 모든 것들을 억지로 끌고 걸어가고 있었다. 삶에 여유가 가득한 아이들은 종종 모든 아이가 자기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뜬금없이 무언가를 주고 그 대가를 기대한다. 애초에 줄 여력도 안 되거니와 무언가를 받은 적도 없기에 주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나였다. 아마 그 당시에 이 때문에 친구와 다퉜던 것 같은데, 그 날에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문자 메일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웃으면 안개꽃 향기가 나 선생님께서 교사하시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선생님 힘드신가?’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선생님의 애정이 다분히 담긴 메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 이후에도 선생님께서는 이상할 정도로 정말 많이 본인 이야기를 하셨는데, 예를 들면 오늘 버스 기사 아저씨께서 인사를 받아주셔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거나 혹은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이 집으로 배달왔다거나 같은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때마다 저게 저렇게 행복한 일인가 ? 라고 쳐다보다가도 이야기가 끝나면 한결 가뿐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버스 기사 아저씨께 인사를 하였고 이를 받아주시면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는 한 어린 학생이 지갑을 흘렸길래 빠르게 쫓아가 챙겨주었는데, 그리고 나면 마치 선생님하고 옆에 웃고 있는 것처럼 한결 가뿐해졌다. 그 선생님은 잘사시려나? 퇴임하신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웃으시려나? 웃으셨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래서 그나마 내가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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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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