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둘째주, 하랑소년: Shape of you

겨울호 두번째 주제 : 성격

by 어느 저자

1.

왜 기분이 안좋더라? 느지막한 점심 께에 일어나 정신을 차린지 2시간. 침대에 누워 인스타나 유튜브를 보다가 문득 어떤 질문에 모든 게 멈췄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날인데, 왜 좋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하다. 나는 얼굴을 베개에 묻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기분이 안 좋을 때 나는 무엇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지? 잘 모르겠다.


어, 나를 모르겠다.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에 웃는지 곰곰이 생각하면 할 수록 시야가 흐려진다. 길을 잃은 듯 하다. 내가 나를 잃어버렸는데 타인이 내가 어디있는지 알 리도 없으니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부스스 일어나 찬 물을 한껏 담아 책상 앞에 털썩 앉았다. 꿀꺽꿀꺽- 탁. 찬 물을 실컷 들이켜도 모르겠다. 30분 동안 아이패드 메모장의 키가 깜빡이는 걸 뚫어지게 봐도 그보단 내 머리가 뚫릴 것 같다. 그저께 같이 술을 마셨던 그 친구가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와 어제 오랜만에 통화했던 그 후배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안다. 근데 나는 나를 모른다. 나는 편식도 하지 않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들으며, 말투가 거칠 때도 부드러울 때도 있다. 속이 곪아 가끔 터지는데도 화를 내본 적은 없으며, 어떻게 내는지 조차도 모른다.


문득 궁금해진다. 왜 나는 이걸 한번도 생각해봤던 적이 없지? 그럴 기회가 없었다. 혼자 있으면 자꾸 빠져드는 나락이 싫어 요 며칠 사람이 잔뜩 모이는 모임에 나갔다. 어제는 이 동아리, 그제는 저 동아리. 사람을 만나 정신없이 말을 하면 이상한 생각이 잘 안드니까. 그런데도 어제는 사람이 왁자한 와중에 소리는 점점 멀어지며 텅 빈 광장에 버려진 기분이 들었었다. 아, 지금 내가 디딘 두 발 아래 땅이 나를 삼켜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겉으론 하하 웃었다. 듣고있진 않았지만, 아마 그 때 내 맞은편에 있던 선배가 장난스런 말을 하고 있었던 듯 했다. 옆에있던 동기가 나에게 그걸 보고 잘 웃으니 보기 좋다, 성격이 좋다고 했었다. 아, 맞네. 나한테 그런 소릴 했네. 시끄럽던 그 소음이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을 가벼이 덮었었네. 혼자 침묵을 맞이하니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아, 빈 속에 찬 물을 마셨더니 배가 아프다. 어색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니까. 허공에 시선을 던져버린다.


밖으로 나와 후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닿는 대로 걷는다. 핸드폰 진동이 징징 울린다. “다음주 말에 이거 하자, 어때?” 음. 괜찮다. “야 나 생각해보니까 이 영화 별로인 것 같아. 이거 대신에 저거 보면 안돼?” 괜찮다. 나열된 회색의 빌딩, 바쁜 사람들, 시간 걱정 없어보이는 교복입은 학생들, 즐비한 카페와 편의점, 얇게 입은 옷에 스미는 추운 바람. 괜찮다. 내 감각에 ‘괜찮다’라는 단어 빼고 회색 스프레이로 가린게 분명하다. 괜찮기만 한 느낌이 괜찮지 않아서, 괜찮지 않은 것이 어색해서 속이 울렁인다. 길을 걸을 이유가 없어 우뚝 걸음을 멈춘다.


나를 잃어버렸다.



2.

지직-


“모든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손에 쥐고 태어나요. 아주 맑은 액체의 상태. 그 엄마와 아빠, 또 그들의 부모, 또 그들의 부모, 저 조상에게서부터 내려와 고르게 섞인 예쁜 색이 아주 옅게 퍼져있죠. 그것들은 태어나서부터 아주 느린 속도로 굳기 시작합니다. 아주아주 느린 속도로.

자라나면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부딪히고, 아직 잘 흐르는 그것에 사람들의 색깔이 아주 살짝 입혀집니다. 굳어지면서 모양도 만들어지고. 막 빠르고 활발하게 이리저리 닿으면서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모가 생기고, 둥그런 부분도 생기고, 가끔 깨져서 날카로운 부분도 생기고. 또는 스스로 깎아내거나 가져다 붙이기도 하죠. 그러면 자라난 소년소녀들은 각자만의 색깔과 모양을 가지게 됩니다. 천천히 그 속도를 가지고 어른이 되죠. 더 굳어지면서.

그게 바로 성격입니다. 내가 가진 모양과 색깔을 보여주고 타인의 그것을 살피죠. 그리고 모양으로 사람들끼리 맞춰보는 겁니다, 마치 퍼즐처럼. 완전히 꼭 맞는 조각은 없어도 비슷한 모양을 가진 사람들끼리 맞추는 것이죠. 볼록한 사람은 오목한 사람이랑, 뾰족하게 나온 사람은 뾰족하게 들어간 사람이랑.”


자꾸만 어색한 기분이 들어 나는 여느 때 처럼 친구를 불렀다. 각자 오른손에1+1 하는 펩시콜라를 들고 홀짝이며 티비가 있는 휴게실에 멍하니 앉아있다. 티비에 나온 사람이 심오한 소리를 한다. 나는 초점이 없는 채 앞을 바라보며 친구에게 말한다.


“야. 만약에 저 사람이 말 하는 것 처럼 사람마다 모양이라는 게 있다면, 둥그런 사람도 있고 별모양인 사람도 있을 테잖아. 근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맨날 모양이 바뀌어. 사람들에 맞춰서 모양을 바꾸다보니까, 나는 내 모양을 모르겠어. 모가 났는지 둥그런지 어디가 들어갔는지 나왔는지 모르겠네.”


“... 그게 너의 모양인 거야.”


-


그 별것 아닌 짧은 대답은 생각보다 머리에 길게 맴돌아 그 뒤에 어떤 대화를 했는지, 어떻게 그 친구와 헤어졌는지 기억이 안난다. 나는 왜 내 모양을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래, 그래도 돼.


부정이나 긍정이 아닌 인정. 그래도 돼. 뭐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지 상관없어. 그 짧은 말을 내게 그동안 건네지 못했던 것이다. 뾰족한 모양, 둥그런 모양 중 그 어떤 모양이 옳은지 그른지는 상관이 없다. 내가 나를 보는 그 모습을 내가 인정하지 않고 눈을 뜨지 않았다. 왜 타인에겐 그렇게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나에게는 그렇지 않은지.


내가 그 때 그 부탁을 들어주고싶지 않았을 때, 그냥 거절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나니까. 파스타가 당기지 않았을 땐, 그냥 부대찌개 먹자고 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수저를 사용해 내 입에 음식을 넣는 건 나니까. 우리 다른 거 보자, 라고 말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티비를 보는 건 나니까.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맞췄다 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게 내 선택이니까.


그래, 인정하자. 눈을 뜨고 나를 보자. 눈에 먼지가 들어오거나 내 모양의 중심이 굳어가는 게 어색해서 무서웠지만, 나를 잃는 것보다는 덜 무섭다.


인정이라는 것은 내가 길을 잃었다고 질끈 감은 눈을 뜨게 했다. 내가 디딘 곳이 어디인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내 모양을 알았다. 나는 다른사람이 우리 잘 맞다, 하며 웃음짓는 것이 좋아 내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기도 했다. 가끔 누군가의 모난 모양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기름진 음식을 먹긴 먹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모든 장르의 노래를 듣긴 하지만, 트로트는 구리다. 그 모든 게 다 내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맞춰주는 걸 좋아하지만 가끔 싫다고도 말하고 싶고, 마지막 서로 눈치보며 남겨둔 과자 한 조각을 주워먹고 싶고, 몸이 안좋으면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나는 그런 사람이 나다.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와 후드를 벗었다. 책상에는 내가 마신 물컵이 놓여져있고, 핸드폰에서는 여전히 이런저런 알림이 울린다. 타닥타닥- “언니, 나 아무래도 그 영화 봐야할 거 같아. 언니 보기 싫으면 나 혼자라도 저거 볼래”. 지잉- “헉 그래? 아냐 그럼 그거 보자. 내일 11시 맞지?”. 내가 좋아하는 인디밴드의 노래를 틀고 내가 좋아하는 이불의 포근함을 느끼며 풀썩 누웠다. 나의 무게, 나의 중심. 나의 모서리, 나의 곡선. 그 모든 것을 느끼며 기분좋은 졸음에 빠진다.



From.하랑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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