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둘째주 , OHMJ : 평행의 이면

겨울호 두번째 주제 : 성격

by 어느 저자

나는 항상 내가 맡은 역할에 따라 모습을 바꾸고는 한다. 어떤 집단에서는 활발하고 넉살 좋은 사람이, 어떤 집단에서는 예의 없고, 싹수 노란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성격을 정의할때는 항상 가정이 붙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와 나 사이에 나의 성격은 OOO. 심지어 나와 나 사이에서 나의 성격은 OOO. 가면을 쓴다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지만 나는 나무라고 표현하고 싶다.

주변이 따뜻해지면 응당 꽃을 피워 낼 것이며, 주변이 추워지면 앙상해지는 그런 나무. 원래의 성격이 그런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런 모습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
요즘 우리는 어떤 집단에서 부여한 본인의 모습을 어느 상황에서나 지켜내는 시간들이 많다. 아니,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처럼 남이 부여한 본인의 모습을 잃지 않는 태도로 이 삶을 감내해야만 한다. 내가 아닌 나의 모습들은 바싹 날이 선 날붙이들을 마음 속에 담게 하고, 하루를 되돌아 산책 할 때면 발에 상처를 남겨 가장 붉은 것을 보고도 괴로워 하며 우리는 결국 또 다음날을 나아가야만 한다. 또 유난히 힘든날에는 그 날붙이들이 혀를 통해 다른사람에게 던져질 때도 있다.
-
가장 치명적인 것은 내가 무너져 내릴 때이다. 그런 내가 아닌 나의 날들이 이어질수록 작은 계기에 무너지고는 한다. 대나무는 그 결로 한번만 날이 들어서면 쩍 하고 갈라진다.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런 모습들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있다. 마음속이 공허하다면, 이미 대나무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무작정 본인의 모습을 되찾아라 하는 일은 너무도 무책임한 말인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살수만 있다면야 더욱 좋겠지만 사실 불가능하다. 여러 모습들 사이의 공존을 도모하는 것, 가끔 내가 진짜 편해지는 고향집같은 시간을 가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
나에게 지금 당장은 이 페이지에 단어를 엮는 일이 그 온도라 하염없이 적는다. 누군가에게도 이 글을 읽는 시간이 공존의 온도이기를 큰 소망을 가져 본다.
항상 내어주는 가을 나무 모습의 우리에게, 항상 날이 선 앙상함을 유지해야하는 겨울 나무 모습의 우리에게 나를 가감없이 내비칠 수 있는 온도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리의 마음 속 공존을 생각하며 짧은 시를 남긴다.
-
나의 안과 밖은 늘 공존하지만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처럼
내 안은 무한하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한의 평행선
그 속에선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운다
아니, 울지 않는다
아니 울 수도, 울지 않을 수도


밖에서 안을 관찰 할 수 있을까
안에서 안을 들여다보아도
또 안과 밖이 생길텐데
결이 다른 두 가지는 섞이려하지 않고 공존하며 서로 속삭인다
서로가 공존하려면 서로가 아주 독립된 상태로 존재해야만 해
하나 된 듯 보이는 수평선과 사실 닿을 수 없는 현실로 존재하게
그렇게 살자


그러려면 우리는 창백한 입술로
진실이 아니었음을 고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직선은 죽었으니,
우리의 시간은 어떤 일방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평행선
이제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 하여도 닿을 수 없고
사랑하여도 만질 수 없으니
선이 끝나는 날 까지 마주해야만 하는
평행의 저주


평행의 이면/OHMJ



from.OHMJ




이전 08화[겨울호] 둘째주, 시언 : 열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