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두번째 주제 : 성격
3에게.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는지요.
뉴스로 전해 들으셨을진 모르겠지만, 이곳엔 기후 이상으로 매일같이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때문인지 요 며칠 저는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일에 취미가 생겼어요. 새벽 네시 반이면 눈을 뜨고 주전자에 물을 넣어 끓이기 시작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주전자라니, 저도 여전히 고상한 면이 있는 듯합니다. 구시대의 산물이야말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할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물이 끓고 나면 머그잔에 블랙커피를 타고 창가로 나섭니다. 창밖엔 이미 나풀거리는 흰 입자들로 온 세상이 가득 차 있곤 하죠. 중력에 저항하지 못한 채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순식간에 떨어지는 입자들을 바라보다 보면 존재의 의미 따위는 의식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곤 합니다. 그렇게 서서히 소멸되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눈보라가 잠잠해지고 세상은 없던 것처럼 고요해집니다. 그때 보이는 세상이란, 거대하고 흰 구가 세상을 집어삼킨 무(無)의 공간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어쩌면 저는 인류의 종말을 매일 아침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이란 찾을 수 없는 시공간 속에서 꾸역꾸역 목숨을 이어가는 초라한 제 모습이 유일한 오점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오점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색(白色)의 공간에서 나 혼자 타색(他色)이 되는 일이니까요. 평생을 다른 색이 되는 일에 어색해져 왔는데 막상 아침마다 마주하는 이 기분은 억지로라도 삶을 이어나가고 싶은 욕구를 들게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의 무의 공간에서 삶의 의지를 얻는 중이라 말할 수 있겠네요.
몸에 ‘열일곱’이라는 숫자를 새기던 날이 떠오릅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그저 숫자 하나를 새겼을 뿐인데, 저는 여느 ‘열입곱들’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잘못에도 화를 잘 내던 제가 크게 화를 내는 일이 없어졌고 웃음이라곤 없던 이전과는 다르게 매일 실실거리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이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식은땀으로 인해 등 언저리가 항상 축축한 느낌이 났었는데, 이제는 먼저 나서서 대화를 걸기도 합니다. 혼자서 여행을 떠나보기도 했고, 사람들이 좋아 여러 모임에 나가보기도 했어요. 이제는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좋은 열일곱’이 되었고 꽤 좋은 직장에 추천까지 받을 수 있었어요.
저는 제가 바뀌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의 삶을 지워버리고 열일곱으로서 새롭게 살아가는 삶을 꿈꿨고 실제로 그 꿈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열일곱으로서 행동하면 할수록 스스로가 지워져만 가는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어요. 저는 진정한 열일곱이 되어 열일곱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닌 그저 새겨진 숫자 때문에 열일곱처럼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내면은 숫자를 새기기 이전의 ‘나’로서 존재하는 중이었던 거죠.
아주 오래된 영화 ‘아바타’를 기억하시나요? 숫자를 새기는 일은 아바타를 이식 받는 일과도 비슷한 일이었습니다. 외형은 아바타의 것을 가졌지만 저를 조종하는 건 아바타의 종족이 아닌 인간의 몫이죠. 저의 내면은 아바타의 종족이 되었고 몸에 새겨진 숫자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숫자에 의해 저는 내키지도 않은 행동을 행했으며 그 행동은 나를 ‘좋은 열일곱’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저는 일련의 과정을 ‘반사적 의식’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떠올리지도 않았던 말과 생각들은 그저 반사적인 행위와 같았습니다. 날아오는 물체를 피해 몸을 숙이는 행동이나 희미한 빛에 팽창하는 동공처럼 말이죠. 다만, 의식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우리가 반사적인 행동들을 통해 생존한다는 사실이에요. 어둠에서 더 보기 위해, 급소를 조금이라도 비껴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기 위해서 설계된 시스템이죠. 마찬가지로 ‘반사적 의식’은 나를 좀 더 생존하게 해주었습니다. 인간들의 틈에서, 여러 숫자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더 나은 존재로 생존할 수 있게 말이에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획일화하기 시작한 순간이 언제부터였을까요? 이전에는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끼리 동일시되기도, 고작 열여섯 가지 유형의 인간만 존재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제는 서른 가지나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고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란 그저 한 가지일 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가지뿐인 인간이 서른 가지의 아바타가 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는 거죠. 결국에 그 껍데기를 벗겨보면 다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거예요. 이거야말로 정말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네요.
제가 처음 열일곱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순간이 생각나시나요? 다른 열일곱이 쓴 모험기를 읽고는 이런 생을 살고 싶다고 호소하던 그 순간 말이에요. 당신은 열일곱이기 이전의 내가 더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죠. 그래요 인정하긴 싫지만 어쩌면 당신이 맞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일곱으로서 사는 일이 생각만큼 행복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당신이 늘 말하던 신념과 용기, 자신감과 끈기 같은 가치들이 떠오릅니다. ‘신념’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아시겠죠. 이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니까요. 만약 제가 열일곱이 아닌 이십오나 십삼을 선택했다면 만족하며 살았을까요? 가끔은 제가 다른 숫자들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곤 할 때가 있어요. 요즘은 특히 3이라는 숫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는 중인데, 그래서 당신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3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어떤 가치가 남아있을까요? 그 가치가 늘 얘기하던 신념에 비할 정도인지 궁금하네요. 당신도 나처럼 껍데기 같은 삶이라 느끼고 있을까요? 당신은 좀 더 고민하고 고른 숫자이니 안 그럴까요? 나도 3을 골랐더라면 당신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아아, 생각만 많아지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에 한없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이만 글을 마칠 때가 되었나 봅니다. 무의 공간이 붉게 차오르는 중이거든요. 흰 공간의 세계를 붉은빛이 가르고 나면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해요. 쩌저적, 쩌적- 하고 깨지는 거죠. 그러곤 다색(多色)의 공간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제가 가진 다른 색은 더 이상 다른 색이 아니게 되어버려요. 열일곱의 삶만 남는 것이죠. 그래도 잠깐 얻은 삶의 의지를 통해 꾸역꾸역 살아가 보려고 해요.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같은 색의 삶을 견디고 있나요.
좋은 방법이 있다면 회신해주면 고맙겠어요.
열일곱이 아닌, N으로부터.
from.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