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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May 18. 2021

[겨울호] 다섯째주,하랑소년:새 집,엄마,그리고 보리차

겨울호 다섯번째 주제 : 용서

이사 D+23


근 5년 만에 네 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 졸업하기 직전까지 지방에서 공부하다 본가에 올라와 알바와 함께 취준을 하고 있다. 도중에 내 인생의 반 이상을 지낸 집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새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생활에 시달려 이사가 늦어 미안하다고 했다. 늦둥이 17살 남동생은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좋다고 방방 뛰기나 했다. 티라도 안 내면 부모님이 마음이라도 안 아프지, 이 자식이.


그래, 좋긴 좋다. 습하고 볕이 들지 않던 그 집에서 약 16년을 살았다. 철이 없던 시절, 좀 더 깨끗하고 넓은 집에 살던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온 날엔 집으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빛 바랜 벽지, 방문도 완전히 닫히지 않아 그사이 틈으로 밖의 말소리며 티비소리가 다 들리는 그 집. 어머니와 아버지의 금전에 대한 의논, 나의 진학이며 학원에 대한 의논과 시간이 지나 고스란히 동생에게 향한 같은 의논. 마냥 나도 남들처럼 같은 학원과 같은 옷을 입고서는 천진할 때가 있었으나, 내가 집에서 가진 것에 비해 너무 과분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오면, 출처도 방향도 모르는 분노와 섭섭함, 그리고 슬픔이 온통 내 공부하는 공간을 에워쌌다. 방문 틈으로 새어 나갈까 조심히 가두면서.


이제 우리 집은 온통 부드럽고 깨끗하며 정돈된 톤 다운의 화이트 베이지색의 집을 가졌다. 새로 출발하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많은 것을 버리고 이사를 왔다. 그래, 새 출발이다. 티는 안내도 참 속없이 좋은 게 아직 철이 덜 들었나보다. 이사 온 지 3주, 아직 정리할 게 많지만 차차 하면 되겠지. 보리차나 마실까, 슥 방에서 나온다. 아버지는 회사에 가시고 동생은 학교에 가서, 일을 잠시 쉬고 계시는 어머니와 단 둘이 집에 있다. 온통 하얀색으로 맞춘 가구가 안그래도 넓은 집을 더 넓어 보이게 해서 그런지, 그사이에 구부정히 걸터앉아 휴대폰을 가까이 들여다보시는 엄마가 조금 더 작아보인다. 왜 맨날 저 자리에 저 자세로 앉아있을까. 엄마 주름살이 더 많아진 것 같네. 안 듣는 것 같은 라디오는 왜 켜두는 거지. 갓 끓여놓은 보리차가 따뜻할 때 마시라는 잔소리를 뒤로하고 얼음을 6개 띄워 다시 방으로 돌아와 좀 시원해진 보리차를 원샷한다. 내일은 자소서를 좀 써야지. 이곳에서 나의 몫을 해야지.
 

이사 D+24


“누나, 나 5만원만.”


“아 꺼져. 나도 돈 없어.”


“아 제발 진짜! 용돈 받으면 갚을게!”


“가라 좀.”


그렇게 아침에 방 앞에서 얼쩡거리는 남동생을 밀치고 방문을 닫았다. 저거는 언제 또 철이 들려나, 나 알바하는 돈으로 이것저것 커버하려면 여유 없는데. 아, 몰라. 생각이 있으면 자기 용돈 관리는 자기가 해야지. 내 알바비도 최저시급인데... 그래도 그 정도는 줄 수 있었나. 종일 징징거리던 동생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맴 돈다. 머리를 싸매고 자기소개서를 한창 쓰고 있을 무렵, 노크소리가 방 안 조용한 공기를 깼다. 엄마다. 평소라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야 하는 엄마가 답지 않게 쭈뼛거린다.


“소연아, 바쁘니?”


“왜?”


“아니 그.. 저기.. 여윳돈 좀 있니? 준성이가 돈이 없어서 꼭 사야 하는 걸 못 산다더라. 엄마가 당장 현금이 없어서 용돈을 못 줬거든.”


“ ... ”


“아유 좀 어려우면 안 줘도 되고! 엄마가 돼서 애한테 부담을 주고 그런다, 그치? 엄마가 준성이한테 좀 기다리라고 할게. 미안해, 소연아. 할 일해~”


허둥지둥 나가려는 발걸음에 내가 엄마 계좌로 보낼게, 했다. 마음이 불편한 얼굴을 하곤 엄마가 빨리 주겠다며등을 토닥여주고 나간다. 머리가 복잡하다. 빨리 취업을 하든지 해야지... 여러 이기적인 마음과 원망스러운 마음이 모공 밖으로 삐죽삐죽 나올 듯한 것을 어금니에 힘을 주어 눌렀다. 빨리 취업해서 돈이나 왕창 벌어야지. 앉은자리에서 20만원을 보내고는 자소서 초안을 후룩 다 썼다.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나갔다. 엄마는 어제 앉아있던 그 자리 그 자세 그대로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본다. 아직 다 나오지 못한 그 삐죽한 마음이 한쪽 눈썹과 아랫입술에 살짝 실렸다. 보리차의 더운 냄새를 맡으며 나는 털썩 엄마 앞에 앉았다. 엄마는 무엇을 딱히 응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허둥지둥 얼굴을 가리던 엄마를 붙잡고 천천히 물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거든. 열심히 사는 아빠랑. 우리가 이 악물고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너희들이었으니까. 어떤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상사가 있어도, 나는 자식이 있으니까, 가족이 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좀 무리해서 이사를 왔어. 밝고 깨끗한 데에 앉아 할 일들 하는 모습을 보니까 엄마 마음이 참 좋더라. 그런데 아직 부족한가봐. 너 알바한다고 처음 얘기 들었을 때 뜯어말리고 싶었는데. 우리 딸 힘들게 번 돈을 빌리겠다 말을 뱉으니 눈이 깜깜해지고, 네가 도와주겠다 말을 하니 또 딸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엄마가 소연이 너한테 뭘 많이 못 해준 것 같아 미안하네”


“엄마는 뭐가 그렇게 미안해. 됐어.”


눈물이 한 댓 바가지 나올 것 같은 걸 짜증으로 간신히 가리고 방에 들어와 조용히 울었다. 이사오기 전 방문 틈 사이로 새어 나갈까 숨죽였던 그때 처럼.
엄마는 나에게 자꾸만 용서를 구한다. 무얼 그리 잘못했다고. 내가 엄마를 원망했던 그 어린 마음이 죄스러워 자꾸만 애먼 벽에 새카만 원망을 던진다. 그 원망이 튕겨져 내 머리를 자꾸 때린다.


아프다 아파.
  

이사 D+26


토요일에는 엄마가 늘 외출을 하신다. 어제도 엄마가 외출하셨고, 어쩐 일인지 아빠와 동생도 다 집에 없어 오랜만에 혼자 집에 있었다. 엄마는 엄마 혼자 있을 때 이 고요를 매일 삼켰을까, 청각도 시각도 촉각도 이렇게나 고요한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엄마가 그렇듯 잘 듣지도 않는 라디오를 켜고 라면 물을 올렸다. 라면을 엄마가 어디에다 뒀으려나, 새로 바뀐 부엌이 익숙지 않아 이리저리 찾았다. 식탁 아래의 선반을 드륵 여니 낯선 약봉지가 있었다. 엄마가 괜히 요란하게 약만 많이 준다고 투덜거리던 그 병원 옆 약국 이름이 쓰여있었고, 그 봉지엔 각 알약의 효능이 적혀져 있었다. 약을 지은 요일은 토요일이었다.


아, 뭐 이렇게 비정해.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먹어. 두근거리는 마음에 괜히 중얼거리다 원래 약봉지가 있던 곳에 약봉지를 두었다. 끓고 있던 물은 그냥 그대로 들어 싱크대에 버리고 거실 소파에 그대로 앉았다. 배가 더는 고프지 않았다. 그 자리 그대로 앉아 엄마가 오길 기다렸다. 들어온 엄마에게 따져 물었더니, 그렇게 심한 병은 아니라고, 나이가 들면 으레 가지는 병이라고, 놀랐겠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 미안하다고 그만하지 않겠냐고 짜증 내고는 방에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


엄마가 작다. 엄마가 너무 작다. 그 자세 그대로 있는 엄마와 그녀를 에워싼 하얀색들의 대비가 너무 극적이다. 백그라운드에 들리는 라디오에는 안개가 낀 마냥 들릴 듯 들리지 않는다. 멍하니 응시한다.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 목소리가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진다.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이니까.


언젠가 엄마에게 엄마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엄마의 인생은 가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생을 바쳐 우리를 안고 있던 엄마에게 엄마의 인생을 살라고 했다. 또 언젠가 엄마에게 새롭게 바뀌는 세상을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엄마의 세상은 나와 내 동생이었다. 바뀌는 것은 커가는 우리었고, 엄마는 그 자리 그대로 우리를 바라보며 주름살에 세월을 새기는 중이었다.

 
이기적인 나는 엄마에게 다른 대학생들이 어떤 걸 먹고 어떤 전자제품을 사용하며 어떤 플랫폼에서 옷을 사 입는지 떠들어댔다. 엄마가 깨닫고 나에게 용돈을 좀 더 줬으면 했다. 언젠가 엄마의 핸드폰을 사용해야 했을 때, 내가 말했던 그 키워드들에 “가격” 자를 붙여 검색했던 기록을 보고 나는 두 손을 멈췄었다. 개방적으로 자율적으로 내버려 두는 내 친구들의 어머니들에 대해 투덜거리며 얘기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단호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걱정을 하면서 나를 막아설 때, 나는 엄마와 며칠을 대치했던 적이 있었다. 엄마가 보는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아니, 그전에도 내 존재가 엄마를 행복하게 하기는 했을까. 다른 걱정 없는 사람들은 힘든 직장이라면 퇴사했을 텐데, 엄마는 그걸 나 때문에 견뎠을까. 엄마도 엄마의 더 큰 꿈이 있었을 텐데, 그게 억울하지 않을까. 성장을 겪으며 반항했을 때, 내가 사랑을 갈구했던 그 지나간 사람으로 인해 몇 날 며칠 밥을 굶으며 가족들을 향해 히스테리를 부릴 때 엄마는 내가 원망스러웠을까. 혼자 누구에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둘러대고 매주 저렇게 병원에 들락날락할 때의 외로움은, 아니 그 전에 병원에서 알려준 그 병명이 처음 허공에 내뱉어졌을 때 엄마의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엄마가 너무 작다. 저 모습이 너무 작다. 내 마음속의 엄마는 이렇게나 큰 사람인데, 저 넓은 집 중앙에, 오롯이 엄마의 공간이 없이 저 넓은 하얀색 중앙에의 엄마는 작다. 나는 이 죄들을 크고도 작은 엄마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내 가벼운 무릎에 얼마의 무게를 담아야 엄마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


-


엄마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있다 인기척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였다. 내가 좋아하는 머그잔에 보리차를 따르고는 나를 향해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소연이 나왔니? 아유 고생한다. 얼굴이 까칠해 보이네. 따뜻한 보리차 마셔. 요즘에 날씨가 건조해서, 목에 따뜻한 물을 축여야 해. 볕 든다. 엄마랑 같이 앉아서 마시자.”



from.하랑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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