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호] 둘째주, OHMJ : 방랑의 방황

봄호 두번째 주제 : 방랑

by 어느 저자

방랑을 생각하자마자 생각난 단어는 방황이다. 방랑과 방황.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고, 다르지만 그 내용은 비슷하다.
둘 사이의 차이점을 찾자니 목적성의 여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목적의 존재는 방랑이며 목적의 부재가 방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다시 생각해 보자면.
방랑이란 목적지 없이 떠도는 것이며, 방황 또한 언젠가 목적을 정할때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결과론적으로 방황이 길을 찾기 위한 목적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방황이 어떤 결과도출에 도움이 되었다면 그 행위 자체는 ‘이 일을 위한 일이었어’ 라는 목적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목적성의 여부로 나누기에는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랑과 방황을 명확히 구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그 사이의 차이점을 논해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목적성의 여부’ 이외의 다른 기준을 정할 수 없었기에 방랑을 목적성 있는 방황이라 지금 잠시간은 정의하기로 한다. 추후에 더 깊은 고찰, 혹은 더 먼 미래에 많은 경험으로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면, 기꺼이 그 정의를 바꾸고 싶다.


+ 글을 쓴 이후, 둘 사이의 차이를 고민하다 둘 사이 차이는 낭만이 있고 없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가 단어를 찾아보니, 낭만과 방랑의 낭과, 랑은 한자 ‘물결 랑’ 으로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낭만의 유무로 둘 사이를 구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낭만 또한 애매모호한 단어라 차이점을 정의는 할 수 없었다. 다만 낭만의 유무가 방랑과 방황의 차이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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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방랑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과거처럼 나그네가 되어 팔도를 유랑하며 살아가기도 어렵고, 내 것과 내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삶의 큰 목표가 되거나, 남을 판단하는 주된 요소가 된 삶에서는 더더욱이 그렇다.
옛날부터 존재하는 단어의 뜻이란 현재의 것과 맞지 않을 수 있어, 현재에 맞춘 뜻의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번 방랑의 의미는 기존의 ‘물리적인 목적지 없이 떠도는 일’이라는 뜻에서 벗어나, ‘마음이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목적지 없이 다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내일 무슨 프로젝트를 끝내야 해’, ‘내일까지는 어떤 일을 마감해야해’ 등 외부의 개입에 의한 마음의 목적지 말이다.

그렇다면 ‘방랑에서 오는 여러 삶의 변수들과 자유를 맛보기 위해 현대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뭘까?’ 생각하다 보니, ‘목적지 없는 긴 여행’ 뿐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 없이 긴 여행을 떠나도, 처음엔 이 나라에선 어떤 것을 봐야해, 여기선 이걸 꼭 해야해 하는 먼저 다녀간 방랑자들의 기준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시기를 방랑의 방황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나의 목적은 곧 기존 방랑자들의 목적과 동일시 되어 나의 것이 있지만 분명한 나만의 방향이나 목적을 정하지 못해, 결국엔 남의 것과 같은 여행을 하는 일이다. 하지만 마냥 나쁜의미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시행 착오를 초급방랑자 코스라 생각한다. 이 시기에 나의 관심있는 것과 선호 등등 나를 탐구하게 되면 중급 방랑자 코스로 넘어가게 된다.


중급 방랑자 코스란 여러 좋은 평을 가진 선택지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곳을 가고,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자면, 뉴욕에 가면 꼭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파리에 가면 에펠탑을 봐야하는게 ‘국룰’ 이지만, 내가 굳이 관심이 없다면 찾지 않는 그런 단계라 생각한다. 나는 영국에 갔지만, 꼭 봐야하는 근위병 교대식은 보지 않았다. 왜? 묻는다면 보고싶지 않으니까. 한 마디로 정리 할 수 있어야 중급 방랑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시기부터 다른 사람들의 평가보다는 나의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며, ‘방랑자’라는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방랑의 단계를 나눠 보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여행에서 내가 겪어온 방랑을 기준으로 내린 주관적인 정의이다. 본인의 여행에서 만족을 얻고,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여행이며, 초급보다 중급 혹은 고급이 더 높은 단계의 여행이거나 방랑을 의미하는 일이 아님을 밝힌다. 여행객이나 방랑자의 급을 나눈게 아닌, 글에 언급 했듯 남들, 주변의 평들, 유명한 것들로 부터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여행에 도달하기까지의 마음의 과정을 단계를 나눈 것이다.

나도 아직 진정한 방랑자가 아니기에, 고급 방랑자 코스를 정의하지는 못했다. 다만 잠시나마 맛보았다면, 아이슬란드를 여행할때의 ‘세얼간이’ 시절이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우리의 맏형 덕환이형, 든든한 중심 승빈이형, 그리고 나까지. 멋도 없고 돈도 없었다. 매일 제일 싼 소시지와 빵으로 핫도그만 만들어 먹으며, 이미 장기간의 여행으로 꼬질한 모습들.오로지 목적은 오로라의 황홀함을 맛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2주간의 시간을 오로라 헌팅에 목메달았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오로라 헌팅을 딱 하루 포기한 그날. 창 밖을 내다 보기만 했어도 오로라가 보였지만 (드문일이다. 보통 빛이 없는 산속에 가는 일이 많고 구름상황, 오로라지수, 날씨, 달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며 결정적으로 이 모든것을 만족한 장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 승빈이형과 나는 이미 술에 취할대로 취해 잠들어 일어나지 못하고, 덕환이형도 우리를 깨우느라 시간을 허비해 결국 아무도 못본 전설적인 일화는 같은 시기에 여행한 친구들에게는 유명하다. 이 사건은 우리를 진정한 ‘세얼간이’로 만들어 줬다.
아쉬워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쉽지 않다. 상상도 못할 인연으로 아프리카와 뉴욕에서 만난 형들과 다시 발걸음이 겹쳐 아이슬란드를 베낭 하나씩 메고 누비는 일 그 자체를 즐겼고, 우리는 우리만 할 수 있는 여행을 했다.이렇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여행을 하는일. 이게 고급자 코스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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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을 주제로 글을 쓰며 여행을 담고 싶지 않았다. 긴 여행을 했지만, 부족한 나의 필력으로는 극도로 개인적인 나의 세계일주를 글로 풀어 모두를 공감시키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 또한 여행이라 생각하기에 담는다.
우리의 인생이 ‘여행’이기에,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많다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여행자이자 방랑자인 류시화 작가님의 유명한 시를 덧붙이며 글을 줄인다.
(여담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이자, 저의 여행을 있게 해준 책, 읽는 자체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책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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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 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직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구리라.

여행자를 위한 서시 / 1997년 여름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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