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호] 둘째주, 하다 : 미숙한 방랑자

봄호 두번째 주제 : 방랑

by 어느 저자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행을 시작하게 된 거창한 계기 따위는 없었다. 아니 있었던 모든 의미가 상실했다. 2017년 운 좋게 마음 잘 맞는 동기들을 만나 생각 없이 놀던 날들의 반복이었다. 밑에 무언가가 움츠려 있는 것을 애써 무시한 채 오로지 얕은 물 속에서의 물장구에 심취했었다. 그 시절은 세상살이에 대한 생각에 지쳤던 나에게 달콤했던 순간들이었다. 2018년 그런 동기들이 한번에 군 복무를 하러 떠났고, 그 후 혼자 물장구에 지친 나는 그대로 애써 무시했던 감정들을 향해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모두 피상적인 행위들에 그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공허함이 커졌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외면했고, 어느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공허함이 울음을 터트렸다. 본래 울음이 많았던 나였지만 전보다 자주 이유 없이 울었다. 속없게도 그 울음마저 즐겼고, 즐기다 못해 사랑했다. 삶의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울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느 날이었다. 평상시처럼 술자리를 마치고 창가에 기댄 채 멍하니 바라본 버스 내는 유독 희뿌연 안개가 설린 듯했다. 그 술기운을 한 아름 안고 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예상치 못한 적막감과 어둠이 집 안에 가득 깔렸었다. 술과 어둠은 기어코 공허함을 끄집어냈고, 그 공허함은 나를 비집고 나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모든 공허함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모든 관계에서 멀어진 순간에 부글거린다. 공교롭게도 나는 지금껏 모든 관계 속에 있었지만, 사실은 그 변두리에 있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허함이 쉴 새 없이 부글거렸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크게 울음을 터트린 공허함이 다시 삼켜지고 그 자리에는 한가지 물음만이 깔려있다.


‘ 왜 사는 거야? ‘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대다수의 흐름을 따랐다. 남들이 공부하니까 공부하고, 선생님이 좋다고 하니까 좋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대학교 진학 과정도 마찬가지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향해 멋지게 달려가기보다는 그 핑계로 계속해서 연막을 치고 살아왔다. 취업을 위해 선택한 이과, 연장선인 기계과까지 모든 보험이 가득한 삶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모든 연막이 그 공허함이 나온 이후로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고, 비로소 거의 날 것의 나를 찾아냈을 때, 이리저리 헤매는 삶이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주입이라도 한 듯이 머릿속은 온통 여행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그 순간 주저 없이 찬란한 은행잎이 떨어지는 밑에서 휴학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 나를 죽였다.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서 시작한 4잡러의 삶은 참으로 단조로웠다. 한 일이 끝나고 다른 일을 가는 시간이 충분치 않아, 평화동 일대를 자전거로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오후 11시에 마지막 고깃집 알바가 끝난 후, 온몸에 고기 냄새가 찌든 채로 집으로 향할 때마다 “현재 누리지 않은 행복이 미래에 다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돈을 아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 달에 2번만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룰을 스스로 세웠고, 이것이 안 지켜지면 여행을 못 가는 것처럼 강박으로 다가와 철저하게 지켜질 수 있었다. ENFP에게 사람이 없는 삶이란 꽤 무기력했지만 아르바이트하다 만난 좋은 사람들로 인해 어느 정도 외로운 마음이 달래졌기에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이었다. 탈피와 방황 그리고 죽음 후에 얻을 수 있었던 방랑이었다.


그리고 나는 미숙한 방랑자됐다.


모든 관계에서 벗어났을 때, 진정한 방랑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애석하게도 그때 나는 아직 나와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행에 대한 높은 기대 그리고 그것을 충족해야 한다는 믿음은 ‘무언가를 해야함’ 으로 이끌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견디지 못해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러시아에서 크로아티아나 혹은 터키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숙소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여행한 크리스가 단돈 2만 원인 불가리아행 비행기 표를 보여주며 같이 가자고 권유했고, 이틀 동안 고민을 하다가 ‘될 대로 돼라지’라는 심정으로 표를 예매했다. 그것이 큰 전환점이었다. 한 번 즉흥은 큰 쾌감을 일으켰고, 그제야 물 밀려오듯 조금 알 것 같은 자유와 함께 정할 곳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닐 수 있었다.


여행에서도 여전히 사람을 쫓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냈지만, 나와의 시간도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그 사람들만큼 수없이 나와도 소통했다. 여행은 사람을 홀리게 만들어 시간 내 관계의 밀도를 진하게 해준다. 그러다 보니 여행 전에 만난 수많은 사람이 나를 스쳐 갔다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관통했다. 그 사람들이 관통하면서 생긴 허무함보다는 관통하면서 남은 파편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고 이에 따라 나와나, 나와 그들의 관계에서 자유롭게 방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제는 귀국한 지 1년이 되었고, 나는 잠깐 완벽한 방랑을 할 뻔했던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미숙하지도 못한 연약한 방랑을 하고 있다. 나는 사회라는 실선, 가족이라는 실선, 친구라는 실선 그리고 내 실선 이 얽힌 모직물 위에서 여전히 선들을 밟고 자르고 당기고 놓아준다. 전보다는 조금 더 유연해졌다고 믿지만, 아직도 힘들 때가 다분한 것을 보면 방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사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내가 방랑을 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가지 안도되는 점이 있다면, 적어도 나와의 관계에서만큼은 여전히 방랑자라는 점이다. 물론 얽히고설킨 실들 때문에 전보다는 때가 많이 탄 방랑자지만 적어도 완벽한 방랑을 할 뻔했던 그때의 향이 여전히 남아 미숙한 방랑자가 방황하지 않게 은은하게 품어낼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이 미숙한 방랑자는 다시 그 선들 사이에서 언젠가 이 선들을 무시할 만큼 더 단단해지기를 꿈꾼다.


from.하다

keyword
이전 04화[봄호] 첫째주, OHMJ : 봄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