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호] 셋째주, 하다 : 깨끗한 대화

봄호 세번째 주제 : 대화

by 어느 저자

누군가를 만나고 오는 길은 필히 그 사람의 영혼 상이 남아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함께한다고 믿는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잔상을 품고 오는 길의 느낌이 뚜렷해졌고 이 기분에 따라서 다음 약속을 기약하기도 미루기도 했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서 기인한 나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완전히 버리지 못해 아직 찝찝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러려니라는 심정으로 좋고 싫은 사람이 분명해진 것도 이 탓이다.

그 잔상은 그 날의 대화를 참 많이 닮거나 때로는 위로를 주기도 한다. 한없이 가벼운 대화에는 그만큼 비어버린 공허함을, 어딘가가 분하고 억울한 대화에는 그것을 해소해주는 상상을, 명료하고 깨끗한 대화에는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주기도 했다. 나는 그중에서 깨끗한 대화를 가장 사랑한다.

내가 생각하는 깨끗한 대화의 준비물은 간단히 말해 자기가 무언가를 알고 모름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나와 너만이 이뤄지는 주제이다. 이 간단하지만 어려운 준비가 갖춰지면 그 대화의 밀도에 상관없이 깨끗이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을 하는 나조차도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한때 나는 허풍도 심했고, 위기 상황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상대방을 웃기기 위해서라면 남과 거짓을 많이 이용했다. 심지어 이를 깨닫게 된 것도 불과 2년도 안 되었기에 아직도 서툴고 어설픈 어른이다.

때는 여행 중에 이집트 다합이라는 프리다이빙의 성지에서 프리다이빙을 배우고 있던 중이었다. 프리다이빙은 제자리에서 앞구르기 하듯 들어가는 덕다이빙을 한 후에 완전히 뒤집힌 상태로 발의 힘을 이용해 바다 깊숙이 내려가는 운동이다. 하지만 나는 압력평형을 유지하는 스킬(이퀄라이징)에 미숙했고, 그러다 보니 완전히 뒤집힌 채가 아닌 중간에 다른 동작을 해서 내려가야만 했다. 남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파란 바다따라 머릿속에 블루스크린이 떠, 오로지 그 행위만을 바라본다고 했는데, 나는 신경 쓸 동작들이 많아서 그런지 항상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마지막 시도 때 였다. 한 3M정도 내려갔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얀 줄에 따라 내려가야 하는 것도, 이퀄라이징이 안되면 몸의 각도를 줄여가면서 될 때까지 시도하는 것도, 도저히 보이지 않는 목표 지점도, 징하게 시퍼런 바다도, 다 귀찮았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바로 수면 위로 달려갔다.

올라오자마자 내뱉은 건 회복호흡도 아닌 거짓말이었다. 사실 내려가기 귀찮았으면서, 아니 못하는 내가 너무 속상해서 포기하고 싶었으면서 “숨이 갑자기 턱 막혔다”라고 없는 말을 했다. 거짓말해야겠다는 사전고민없이 습관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그 와중에 강사님은 친절하게도 잘 다독여주고 그럴 때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려줬지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너무 놀라서 내가 그 내용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만의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 날 내가 평소에 했던 대화습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한번 대화에 신경 쓰다 보니 보이는 문제점들이 한둘씩 숱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가장 고치고 싶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듣기와 마음가짐이다. 이따금 나는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단어가 생각이 안 나거나 혹은 나보다 느린 속도로 대화할 때, 대화를 가로채 나만의 언어로 되물어보곤 했다. 그러한 행위가 이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표시로 보여 교과서에서는 비언어적 동의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럴듯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답답함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그 대화에서 여유가 제일 없는 사람이다.

또한, 내가 대화에서 무엇보다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나도 모르는 것이 많은 아이'라는 점이다. 간혹 잘난 척을 하고 싶은 습성 탓에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정보를 ‘아는 척’ 말하는 버릇 있었다. 전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는데, 요즘은 당당하게 ‘모른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존경스럽다. 마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오직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말하는 자넷랜드의 위험들이라는 시에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라는 문장을 추가하고 싶은 심정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깨끗한 대화를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아직도 서툴고 어설픈 어른이다. 그러기에 아직도 종종 대화의 식탁에 남을 올리거나 끼어들거나 아는 척을 한다. 그럴 때마다 그 대화의 잔상이 뚜렷하게 남아 여김 없이 찝찝함이 가득한 귀갓길을 가지면서 또 반성에 젖는다. 정 맘이 쓰일 때는 대화의 상대에게 다시 전화 걸어 사과와 정정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여러분들에게 나름의 노력을 인정해달라고 징징거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늘도 이러한 다짐 같은 글을 통해 깨끗한 대화를 쫓아가 본다.


from.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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