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호 네번째 주제 : 꽃
꽃은 저에게 기억과 시간의 지표가 되고는 합니다.
매화가 피면 저게 벚꽃인가 고민하며 곧 봄이 오나? 생각을 하고
송화가루가 날리면 아 이제는 반팔을 준비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아닌 봄에 하얀 눈꽃같은 이팝나무가 만개 하면, 이제는 겨우내 묵은 낚싯대를 꺼내야지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송화가루가 날리고, 장미가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쯤 피는 장미를 보면 항상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여행을 가기 위해 공장을 다니던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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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새벽의 공장은, 전날의 뽀얀 먼지들이 소복히 기계와 바닥에 쌓여있고, 귀마개를 끼지 않으면 귀 먹을 것 같던 공장 소음도 없어 극과 극 상황을 오가는 공간의 모습에서 오는 그 오묘한 감정을 즐기곤 했다. 출근을 한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단기를 올리고, 기계를 예열하고, 오늘 만들어야 할 물건을 체크하며 공장 뒤의 조그만 공간에서 부사수와 같이 담배를 태웠다.
“야 철진아 오늘 나갈 물건까지만 만들고 다음 나갈 거는 내일 부터 시작하자. 어차피 미리 다 해봐야 일만 들어오니까 오늘은 좀 설렁설렁 하자고”
“형 근데 그라인더 날은 언제 들어오는 거에요? 이제 두장인가 남아서 진짜 있어야해요.”
“공장장님한테 말해놨는데 좀 아껴쓰라고 하시네 일단 이따 점심에 말씀드릴테니까 가서 철판 재고 확인하고, 자재 최대한 쓰게끔 기아기 해놓고.”
철판을 자르기 위한 표시를 하는 기아기나, 용접 후 철판을 다듬는 그라인더질, 절단기, 절곡기에 손이 들어가거나, 날카로운 절단면에 베이거나, 몇 십톤의 철판이 들어올때의 사고 등등 각종 위험이 도사리는 공장에서 스물 셋의 나는 펜보다 용접기를 잡는 나날들이 더 많아지며, 도사린 위험들은 점점 저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공장장님 그라인더 날이 다 떨어져가지고… 혹시 언제쯤 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니 자재좀 아껴쓰라니까, 사무실에서 자꾸 자재값 많이든다고 뭐라고 한다니까. 이번달 안에는 사줄테니까 남은 걸로 써”
이미 몇 차례 말 해도 받지 못한 그라인더 날은 회전할때 흔들림이 커져서 제어가 힘들었고, 곡예사가 외줄을 타듯 불안한 장비를 사용하며 계속해서 용접면을 다듬던 중이었다. 이미 교체 시기가 한참 지난 날에 홈이 깊게 파이면서, 내 손아귀힘으로는 감당못할 힘을 내며 날아갔고, 정말 영화같이 내 손목을 긋고 지나갔다.
그렇게 병원으로 바로 이송되어, 지혈하고, 팔을 꿰메야 했음에도 공장이란, 철이나 망치만 도구가 아니고 사람마저 도구인 곳이라, 다음날에도 출근을 해야했다.
그 일이 있던 이후 상처가 다 아물어 거즈를 떼고 난 후에야 나는 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 가야하는 날에는 눈치를 보며 가야하는 서러운 기억들과 소모품을 미리미리 사주지 않은 원망들, 죽을뻔했다는 공포감. 흉터는 나에게 그런 안좋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였고 그런 기억들에 정말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들어, 나는 흉터를 덮는 타투를 생각했다. 긴 흉터와 옆의 꿰멘 실의 점들의 모양이 장미의 줄기를 생각나게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로, 장미 타투를 생각하게 됐다. 올드스쿨, 블랙 앤 그레이 등등 타투도면을 매일 봤고, 어느정도 결정이 섰을 때 비로소 상처에 대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얼큰하게 취해서 집에 돌아오던 밤, 상처에 얽힌 속내를 털어놔서인지, 편한 마음으로 상처를 물끄러미 들여다 보았다. 여러 부정적인 감정만 새겨져 있다고 생각했던 상처를 조용히 어루만져 보았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내가 이 상처에 얽인 감정들을 단순히 덮는다고 해결될까? 이런 감정들을 똑바로 마주하며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이런 일들이 있지 않기를 고민하며 살아가야하지 않을까? 타투에 대한 고민인 확신이 된 순간에 나는 사실 타투에 얽힌 감정들을 덮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제야 모든 감정을 소화 하고 나아가기 위해 타투를 맘먹은게 아닐까?’
그 밤의 끝에 내 생각은 180도로 달라졌다. 이 상처 자체가 나에게 인생의 교훈을 새긴 타투가 된 느낌이었다. 나에게 이런 상처를 남긴 존재들을 피하려 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며, 이런 사회적인 여러 불합리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졌다. 타투는 잊고 싶지 않거나 신념 혹은 좋아하는 것들을 몸에 새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순간 이 상처도 나에게 하나의 잊지 말아야 할 존재가 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휴대폰에 저장된 여러 도면들을 삭제 했다.
그렇게 내 손목에는 그라인더로 새긴 타투가 아직도 남아있고, 나는 그렇게 살아있다.
힘든날이나, 상황에 빠지면 내 손목의 타투를 쓸어보고는 한다. 한 셈 치기로 한 타투를 볼때면 왠지 활짝 핀 장미가 겹쳐보이고는 한다.
from.OHM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