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호] 넷째주, 은희 : 나의 아름다운 정원

봄호 네번째 주제 : 꽃

by 어느 저자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카랑코에의 노란 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화분 가득했던 봉우리들이 하나둘 펴지면서 그 속에 감춘 노란 속살을 들어내 베란다에 한층 더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겨우내 움츠려있던 다른 친구들도 날이 따뜻해짐을 아는지 싹을 움트고, 새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 이제는 맘먹고 숫자를 세어야 할 만큼 많은 식물과 동거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일 년. 시간이 지날수록 식물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져 만가 요즘 들어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식물과 함께 보낸다. 가만히 앉아 넋 놓으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왜 그리 쏜살같이 흘러가는지. 하루가 지날수록 조금씩 변해가는 그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다. 끈기도 없고 무엇이든 쉽게 질리는 성격상 식물 또한 한낱 흘러가는 관심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 년이 지나고서도 여전한 거보니 나조차도 지금의 내가 신기하기만 하다. 어쩌다 이리 식물에 빠지게 됐는지, 이제는 그 이유조차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겠다.


동거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자취와 여행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시 돌아온 본가의 내 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사건부터 시작해야 할 듯싶다. 시선을 뺏기는 형형색색 꽃무늬 벽지, 작은 방에 비해 큰 옷장과 책상은 방을 더 좁게 만들었고 오랫동안 비어있던 탓에 창고와 흡사하게 많은 짐들이 쌓여있었다. 여행하는 내내 머물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을 그리워했기 때문인지, 언제 또다시 독립할지 몰랐지만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내 취향이 한껏 묻은 방에서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가구를 버리고 페인트칠을 하고, 마음에 드는 가구를 구매하며 내 취향을 조금씩 물들어가던 때, 작은 생기라도 불어넣자 해서 들인 게 나의 첫 식물 ‘몬스테라 델리시오사’였다. 그저 인테리어의 하나였던 식물에게 어느날 새잎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 그때의 상황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알려고 하지 않았던 생명이 존재했음을 깨닫고 그 생명의 성장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면 너무 뻔하디뻔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뻔한 상황을 겪고야 말았다.

'식물을 더 들일까?'

식물 집사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이었다.

식물을 기르던 초반에 새삼 깨달았던 것이 하나 있는데 내 성격이 생각보다 꽤, 매우 급하다는 것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뻤던 초기의 마음은 어디 갔는지, 어느 순간 성장이 더딘 식물들을 바라볼 때마다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얘는 왜 새잎을 안 내지?’ ‘무슨 문제가 있나?’ 고작 며칠이 지났다고 그 잠시간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흙을 뒤엎기 일쑤였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항상 “식물 좀 그만 괴롭혀.”라고 말할 정도로 일이 년에 한번 할까 말까 한 분갈이를 한 달에 몇 번을 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 이끌리는 대로 흙을 뒤엎고 나면 대부분의 식물이 아무 문제 없이 건강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때는 마음속 깊이 있던 어두운 욕망을 들킨 것만 같아 창피함이 올라오고는 했다. 흙을 뒤엎는 행위는 순수하게 식물이 걱정돼서만은 아니었다. 어느덧 나는 식물에게 나를 투영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성장하는 식물들을 보며 나 또한 하루가 지날수록 성장하는 것만 같아서. 그런 마음에 성장이 잠시 멈춘 식물에게 불만의 표시를 한 것이었다. ‘너는 왜 성장을 안 해?’ ‘얼른 새잎을 내란 말이야.’ 보이지 않는 흙 속에서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기 위해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에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새를 못 참고 흙을 뒤엎어 버린 것이다. 그런 나의 행위에 식물은 때론 나를 비웃듯이 며칠 지나 새잎을 빼꼼 내밀어주기도 했고, 때론 나에게 토라진 듯 더 오랜 기간 성장을 멈추기도 했다.
식물을 키우면서 많이 듣는 말이 있는데, 식물을 키우는데 중요한 한 가지가 ‘적당한 무관심’이라는 말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기서 말하는 적당한 무관심은 아마 ‘식물에 대한 믿음’과 동일한 말이지도 모르겠다. 잠시 성장이 멈춘 것 같음에도 그것은 다음 해 봄,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 기간이라는 믿음.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확신. 그런 식물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식물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요즘 들어 식물을 돌보다 보면 과거의 내 행동을 되돌아볼 때가 있다. 나는 가끔 결과에만 초점이 맞춰있어 그 결과를 이루기 위해 향해 가는 과정을 쉽게 잊어버리고는 한다. 남들과 똑같을 때에 꽃을 피우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나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도 그 노력을 무시해버리곤 하는데, 그건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는 했다. 남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책망하는 일, 가족에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바라는 일, 친구의 꿈에 함부로 잣대를 내미는 일, 타인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 이렇듯 나는 살아오면서 가까운 대상일수록 보이지 않는 선을 수없이 넘어가 버리곤 했다. 식물에게 적당한 관심이 필요하듯 사람에게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내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뒷걸음질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그 사람만이 피울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라는 믿음, 그것을 위해 지금도 조금씩 뿌리를 내려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 하지만 가끔 과한 물과 거센 바람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알아챌 수 있는 그런 적당한 거리. 그렇게 식물을 돌보듯 나를 돌보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돌보며, 언제나 꽃내음 가득한 나만의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기분 좋은 바람이 창문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카랑코에의 노란 꽃들은 여전히 바람에 살랑거릴 것이고, 무더운 여름이 오면 꽃처럼 아름다운 칼라디움의 잎들이 절정을 이룰 것이다. 여름을 이겨낸 제라늄들은 선선한 가을에 색색의 꽃들을, 진한 향을 내뿜는 클리핑 로즈마리에는 귀여운 보라색 꽃들이, 그리고 추운 겨우내 꽃봉오리를 맺은 서향 동백나무는 새해가 지나 어여쁜 분홍 꽃을 보여줄 테지.
그렇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것이다.


from.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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