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호 다섯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최근에 아끼는 아이로부터 잘 지내느냐고 안부 문자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문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아이가 오랜만에 보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때 저는 잘 못 지내는 상황의 절정이라 울고 있었고, 그 친구는 저보다 저와 같은 힘듦을 먼저 겪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절묘한 타이밍이 주는 위로는 앞날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내용은 그 친구가 요즘 많이 힘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문자가 너무나도 속상하면서도 한편으로 반가웠습니다. 당시에 저는 힘든 이야기를 타인에게 한다는 것이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고, 그랬기에 그 친구가 그 용기를 나에게 내어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말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키보드를 한 시간 동안 붙잡았습니다.
제가 아는 이 친구는 진심으로 멋있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유난히 속상했을지도 모르지요. 제가 지난 여름방학에 이 친구를 가르치면서 적었던 일기에서 몇 자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 제가 왜 그렇게 속상했는지 아실겁니다.
이 친구와 마지막 수업 때였습니다. 그 날밤, 저는 그 친구로부터 “누나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감사해요” 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참 다정한 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어떤 형용사를 써도 부족할 만큼 제가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숭고하다 보니 되려 부족함을 느껴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 아이에게 타인이 저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던 일을 말했습니다. 그때 그의 첫 마디가 “누나,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해요” 였습니다. 사실 저는 그를 웃기려고 한 말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참 올바른 아이구나를 느꼈습니다. 저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 적도 없고 이런 생각을 먼저 한 적이 없기에 더욱이 그 친구가 한없이 높아 보였습니다.
함께 수업하러 카페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와 방학 때 배울 운동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그런 그에게 제가 어깨가 넓어질까 봐 수영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넓어지면 안 돼요?” 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보통 이런 말을 사람들에게 하면 (이해한다 듯이) 웃습니다. 근데 그의 물음에 순간 당황해서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어”라고 얼버무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 날의 그의 말은 곧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어깨는 감추고 싶은 부분입니다. 옛날에 저는 어린 마음에 남,녀를 외관상으로 구별했고 그 당시에 제가 만든 여자라는 틀에 저를 끼워 맞추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 탓에 수영도, 육상부도 그만뒀죠.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아직도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해서 그 말이 저에게 마지막 위로가 되었습니다. 왜냐면 덕분에 그 트라우마의 잔해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운동을 한 후, 운동원 사람들과 피자를 먹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피자를 더 먹으라고 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어리석게도 나이를 언급하면서 “형이 먹으라고 하는데”라는 발언을 했죠. 제가 나서서 말려야 하나라고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그가 “저 정말로 못 먹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그때 그가 무척이나 단단해 보였습니다. 보통은 마지못해 먹는 둥 휘말리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분명하게 말을 하고 정중하게 거절을 하는 모습에서 기필코 모든 일에 굳건하게 나아갈 사람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가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무척이나 안타깝고 가슴이 아렸습니다. 제가 아는 그는 정말 다정하고 멋있고 강하고 무엇보다 위로를 줄 수 있는 아인데 말이죠.
저는 사실 무척이나 갈팡질팡하는 사람입니다. 그 아이가 그 아이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할 때마다 멋있는 척, 답이 있는 척하고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저조차도 제 앞날에 무엇하나 정한 것 없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세계여행을 다녀온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지만 사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고 남의 시선도 부단히 신경 쓰는 편이죠. 오히려 거기서 아직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이미지를 깨고 싶지 않아,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엔 그 모든 것이 저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그에게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 거고 이렇게 하면 괜찮아 질 거고, 그러니까 너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그의 힘듦을 완벽하게 가늠할 수 없었기에 섣부른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저는 제가 무력할 때, 내가 무언가를 바꿀 수 없을 때, 가장 서럽고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현재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행복이 제일 중요하니까.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스스로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그에게 딱 두 가지를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는 새벽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오듯 지금 이렇게 우리가 슬픈 만큼 행복한 순간들도 반드시 올 거라는 말. 그리고 그 때까지 제가 진심으로, 계속, 꾸준히 응원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제 부족한 언변 때문에 진심이 그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늘도 제 행복과 안녕과 더불어서 그 아이의 행복과 안녕을 함께 빌어봅니다.
from.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