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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Oct 01. 2021

[여름호] 둘째주, 하다 : 여름깃

여름호 두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나는 한때 알딸딸한 야밤에 카카오 바이크를 타고 가는 것을 좋아했다. 너무나 커져 버린 대기업을 작은 개미가 견제한답시고, 카카오 뱅크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카카오바이크는 혁신적이라며 두 눈을 부릅뜨며 찾아다녔다. 카카오바이크에 발을 올리고 달리면 나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아무도 나를 신경 안 쓴다는 기분에 뭐든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책임질 것들이 많기에 죽음만큼은 두려워하는 쫄보라 이어폰 소리를 1단계로 맞춰놓고 달린다. 그 소리를 따라 크게 노래를 부르기도, 어깨를 들썩이기도, 한 손을 하늘에 올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넘쳐흐르는 행복을 길바닥에 뚝뚝 흘릴 때면 눈에서도 물이 뚝뚝 흘렀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자신이 너무 하찮고 하찮고 또 하찮았다. 그리고 그 끝은 불쌍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평소에 빨갛게 물들이는 하늘을 보면 그 하늘에 닿고 싶어서 발을 동동거렸고, 아빠의 작은 발같이 미약한 존재가 보이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그리고 자기 직전에 모든 것을 품고 자곤 했다. 그러다 뒤척일 때면 세상을 살아가기에 최적화된 사람이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쉽게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곧 쉽게 행복해한 만큼 쉽게 무너지는 나를 무척 싫어했다.


최근에 사람 관계에 있어서 크게 고심하던 시기가 있었다. 낯선 이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그 과정이 전혀 순탄치 못했다. 오죽했으면 회의 날마다 1시간 전부터 떨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참여야 해야 했고, 이를 티 내고 싶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마스크 속에서 억지웃음을 만들었다. 짧은 회의 동안 나는 철저하게 무너졌고 그날 이후로 삶의 의미가 상실된 듯이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좋은 버릇을 가진 것인지 나는 바다에 잡아먹히면 본능적으로 행복을 찾아서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애쓴다. 겨우겨우 헤엄쳐서 ‘푸하’ 숨을 크게 내뱉으면 저 멀리, 다른 보트 위 사람들은 멋있다며 박수와 환호성을 친다. 그리고 내가 다시 가라앉으면 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무표정으로 방금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거나 먹던 와인을 쭈욱 들이킨다.


이런 괴리감은 나를 끊임없이 의심의 구렁텅이로 밀었고, 그 안에서 나는 ‘힘든 것이 맞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의 대상은 타고 타고 본인에게 본인은 타고 타고 세상에 간다.

그 고민의 대상은 타고 타고 사람에게 사람은 타고 타고 무형에 갔다.


늘어나는 식욕과 반대로 줄어든 것은 머리카락이었다. 매일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집안 곳곳에 꾸불꾸불한 머리카락이 내려앉았다. 하루에 두 번씩 치워도 곧 발가락에 걸리는 머리카락이 나약한 나 자신을 보여준 것 같았다. “ 나 진짜 강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 라고 말하는 나에게 머리카락이 “ 응 아니야, 너 개 쫄았잖아”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나 자신이 괘씸했다. 그렇게 걸리적거리는 머리카락 더미가 눈에 안보일 만큼 익숙해질 씀이었다.


우리 엄마는 일로 인해 주말에만 만난다. 그날은 일주일 만에 엄마가 온 날이었다. 갑자기 벌컥 하고 방에 들어오더니, 눈을 번쩍이며 이렇게 말했다.


“ 하다야, 동물이 털갈이하듯 너도 하나 봐 “

“ 아, 미안 바닥에 머리카락이 많지 ? ”

“ 응 거실에도 한가득해 근데 너도 털갈이를 하나 봐.”

“ 털갈이는 무슨, 나는 스트레스 성이야!,”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딸이 스트레스받아서 머리가 한 움큼씩 빠져나가는 거였는데, 이를 보고 털갈이를 한다며 해맑게 말하는 모습이 약간 서운했지만 동시에 엄마다운 말이라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 웃음이 잦아들 때 쯔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엄마의 말 따라 나는 털갈이 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렇게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시기가 끝나면 새로운 깃이 자랄 거라는 생각 .

비록 나약하고 연약한 마음 탓에 쉽게 울고 쉽게 웃는 내가 오히려 나를 지켜줄 수 있겠다는 생각.

그런데도 나는 새로운 깃을 잘 맞이하기 위해 끝까지,똑바로, 옳게, 맞게, 몸도 마음도 다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


하지만 슬프게도 이 짧은 생각에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나였다. 나는 여전히 프로젝트 생각을 하면 심장이 조이는 느낌이 들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 깃이 돋아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이것이 나의 여름 깃이라 말하면서 어서 이 여름이 지나가기를 빌어보며 잠을 청해본다.


여름깃 – 새소년 부름


곧 지나갈 여름 밤의 소리

여기 어리고 새푸른 두 눈

들이쉬고 내뱉는 나의 코와

시간을 쪼갠 입술이

먼지만 내뿜고 있네


지나간 사람 지나갈 사랑들

내 몸에 새겨질 삶의 타투

나의 젊음에 네 미래를 줘

내 망친 작품을 비웃어줘



from.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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