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둘째주, 하다 : 수족관의 단어

겨울호 두번째 주제 : 성격

by 어느 저자

To. 물고기 박사님 (미발송)

안녕하세요? 박사님, 제가 물고기를 키우는데, 이 녀석들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박사님께서는 물고기를 잘 아시니,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혹시 몰라 도움을 요청해봅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큰 수족관에 아무도 모르게 물고기들을 키웠습니다.

이 물고기들은 저를 무참히 해치기도, 때로는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중심을 아직도 잡지 못해 저에게 있어서 그 녀석들은 풀어야 할 오랜 숙제같이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는 이 물고기들과 함께 한 지 1년조차 안되었는데요. 어쩌면 오랫동안 함께했지만 이름을 불러준 행위가 1년조차 안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마 이 물고기들은 학창시절에 알을 깨고 나온 듯합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학창시절에 당당한 이미지 속에서 할 말을 하지 못한 채 자랐습니다. 자신을 믿지 못했고 저보다 타인이 중점인 삶을 걸어왔지요. 모든 말들을 담아내어 스스로 상처를 내고 곱씹음을 통해 끊임없이 상처를 긁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했지요.

어떠한 상황으로 인해 잘 담아왔던 감정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 감정은 [단 하나의 구]로 나타냈고, 이로 인해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떫음이었지만 그 뒤에 밀려오는 후련함은 마치 목캔디의 맛이라고 하면 알련지요.그 뒤로 그 맛에 갈증을 느꼈고, 그 이후로 종종 그것을 통해 곧장 쾌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때, 알을 깨고 나온 거냐고요? 아니요.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뀌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겠지만 저는 아직도 걷고 있는 것을 보면, 꽤 천천히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마 ‘당당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저라서 외부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심판 : 하다
내뱉은 하다 vs 자기검열하는 하다

네, 맞아요. 저기 자기검열이 바로 그 물고기들입니다. 1년 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에게 걱정이 섞인 말로 명명해준 이름이지요. 양쪽의 힘이 시차를 두고 끌어당겼고, 그러다 보니 중심이 큰 요동을 쳤습니다. 이에 따라 저도 크게 요동치곤 했지요.

이 녀석들은 정말 얄밉게도, 어떤 빈 시간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는지, 한 녀석이 나오고 나면 곧이어 한 녀석이 나옵니다. 특히 내뱉은 하다가 먼저 나오고, 그 뒤로 자기검열하는 하다가 나오는 순간이 제일 버겁게 느껴집니다. 아마 이 글을 쓰고 박사님께서 볼 때쯤에는 자기검열하는 하다가 나와 힘껏 줄을 당길 겁니다.

명명의 힘은 이런 것일까요.
명명하는 순간,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이고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 같습니다.그 뒤로 이 물고기들이 신경쓰였지만 저를 해치는 만큼이나 도움을 주는 녀석들이라 쉽게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무겁지만, 이제는 익숙한 삶을 살고 있을 때쯤 한 시를 우연히 봤습니다.


장승리

정확하게 말하고 싶었어
했던 말을 또 했어
채찍질
채찍질
꿈쩍 않는 말
말의 목에 팔을 두르고
니체는 울었어
혓바닥에서 혓바닥이 벗겨졌어
두 개의 혓바닥
하나는 울며
하나는 내리치며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부족한 알몸이 부끄러웠어
안을까봐
안길까봐
했던 말을 또 했어
꿈쩍 않는 말발굽 소리
정확한 죽음은
불가능한 선물 같았어
혓바닥에서 혓바닥이 벗겨졌어
잘못했어
잘못했어
두 개의 혓바닥을 비벼가며
누구에게 잘못을 빌어야 하나


어쩌면 이 줄다리기는 ‘정확하게 말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기에 이제는 수족관이 아닌 제가 보듬어야 할 단어(單魚)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욕구가 끝나지 않는 한은 계속해서 반복될 테니까요. 아마 그 반복 끝에는 ‘자기 검열하는 하다’ 와 ‘이미 내뱉은 하다’ 서로 흡수됨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마치 나이테처럼 세월과 경험이 수족관의 단어들을 녹게 만들어 [온전한 하다] 될 것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순간이군요. 그 날만을 기다리면서 부지런히 심판을 보고 끊임없이 줄다리기에 참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쓰다 보니 해결 실마리가 조금 보이는군요. 그래도 추가로 좋은 팁이 있으면 회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ps. 아,다시 생각해보니 온전한 하다는 죽어서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 그렇다면 그냥 40살까지만 부지런히 줄다리기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반생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저 하다로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제멋대로 규칙을 세워가면서,


From.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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