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첫번째 주제 : 시작
시작,
순간적으로 몸에 힘을 주거나, 눈을 번쩍 뜨거나, 주먹을 단단하게 쥐거나. 배경음악은 힘차게 뛰쳐나갈 듯 청춘을 노래하는 락밴드 음악이 어울릴 듯 하다. 나만의 길로 내딛는 것, 나의 삶과 나의 흐름. 내가 나를 이루는 하나의 조각으로 또 다시 태어나는 순간. 때론 바보처럼, 때론 청춘만화처럼, 때론 비장하게 전투를 하는 사람처럼 온 몸에 한껏 힘을 주고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에 심장이 내는 진동을 사랑했었다.
정말 그랬다. 그 진동을 사랑해서 나를 내놓아 버리기도 했다. 뜨거워도 보고 차가워도 보고, 싸우기도 해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목숨이 두 개냐고 묻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3초 전, 그 과정속에서 만났던 다양한 모서리의 일들이 백스테이지에 줄지어 서있고, 또 내 앞에 펼쳐질 나는 모르는 새로운 세상이 나를 다시 진동 위에 올려두었다.
뜨거움과 차가움에 데어왔던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작에 짜릿함보단 따끔함을 느꼈다. 몸살을 앓는 듯 따끔함에 두려움 또한 느꼈다. 나는 가슴뛰는 새로운 것에 발을 두는 대신 뛰는 가슴에 조용하라 달래고 있었다. 다시 다치게 될 거야. 시작 전에 으레 생기는 기대감, 설렘, 그리고 두려움은 경계가 잘 없어서 어느 쪽으로 잡아먹힐 가능성도 높아. 늘 환상만 가득할 순 없어. 어리게 굴지 말고 차분하게 내 할 일을 하라고.
앞뒤 재지 않고 시도하던 나를 사랑했었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질 즘에도 앞일이 두려워 고개만 돌리고 있었다. 두 손을 꽉 쥐고 이를 악물었던 것이 그만 손과 발에 땀이 흘러 미끄러질 것만 같았다. 심장은 낯선 나를 견디지 못해 잠시 멈추었다 이내 휘청인다. 위장이 심장을 층간소음으로 신고할 것 같다.
문득 나는 내가 좋아하는 언니의 말을 기억해냈다. 목숨이 두 개냐며 농담했던 그 언니가 말했다. 나는 네 용기가 참 부러워. 나도 하고싶은 건 많은데 이것저것 재고 무서워하느라 시간이 다 갔었거든.
시작이란게 다 그런가보다. 인생의 크고 작은 무수한 도전을 골라 발을 담근다는 것이니 무서울 수 밖에 없는 걸까. 조각조각의 두려움 - 이 길은 내가 원하는 길에 대한 발돋움인가 하는 의심, 처음에 가졌던 기대감과 실제에 대한 괴리감, 해내지 못했음에 밀려오는 자괴감. 그 조각에 쓸리고 베었던 상처가 아팠던 걸 테다.
그렇기에 괜찮다고 거울에다 한쪽 입꼬리만 슥 웃어본다. 당연한 것일 테니까. 사람들은 도전은 원래 두려운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처음부터 강한 척 힘을 주는 것일 테니. 옛날 선조들이 무서운 호랑이 탈을 쓰고 귀신한테 겁주려고 덩실덩실 춤을 췄던 것 처럼, 다들 둥글게 서서 손을 모으고 동시에 하늘로 힘차게 뻗었거나 카운트다운 이후에 환호성을 질렀거나 신나는 풀세션 캐롤을 불렀을 테니까. 함께 왁자하니 소리를 지르며 두려움을 딛고 생긴 하나하나의 집합을 우리가 세상이라 부를테니.
아무것도 모른 채 두려움 없이 시작하며 마냥 즐거워 어딘가 지잉- 울렸었던 그 때가 보고싶지만, 사람이 쓸리고 데었더니 이제는 내 시작에 대한 책임을 생각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다 컸다 말하고 싶지 않다. 나의 시작이 시작으로 아름답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 해 마무리까지 달려야 한다는 당연하고도 어려운 사실을 배웠으니, 포기보단 긴장을 택하겠다. 그래, 이것도 또 다른 시작이겠지. 부딪혀봐야겠지. 몸에 힘을 주고, 눈을 꾹 감았다가 번쩍 뜨고, 주먹을 꽉 쥐어본다.
from.하랑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