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 조선의 선비를 만나다
이덕무(1741-1793)는 18세기 조선의 문예부흥을 주도한 문장가이자 북학파 실학자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정조가 서얼출신의 학자를 등용하면서 1779년 서른여덟에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발탁되었고, 15년간 관직에 머무르면서, 당대 최고지성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과 교류한 인물이다. <열여덟 살 이덕무>는 이덕무가 열여덟에서 스물세 살 무렵까지 쓴 자기 다짐에 대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옮긴 이 정민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가 이 글을 쓴 나이보다 세 배는 더 산 내가 그의 젊은 시절의 글을 읽고 감상을 달면서, 나는 인간이 과연 발전하는 존재인가를 물었다. 문화가 진보를 거듭했다고 하나 삶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 이덕무는 메모광이었고, 책상 위에 빈 공책을 놓아두고, 좋은 글귀나 떠오르는 단상 같은 것들을 적어두었으며, 생계를 위해 엄청난 양의 책을 필사하는 가난 속에 살았었다고 하는데, 대체 무엇이 정민교수로 하여금 '나는 인간이 과연 발전하는 존재인가를 물었다'라고 말하게 했는지에 대해 궁금함이 일었다.
나의 열여덟 살
생각해 보니, 나의 열여덟은 고등학교 3학년, 고3이었다. 매일 아침 7시에 등교해 아침자율학습을 하고 오후 5시까지 7,8교시의 수업을 하고 저녁식사 후 다시 야간자율학습을 한 후 밤 10시나 11시에 귀가했던 나의 열여덟. 매 분기 혹은 매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며, 오르지 않는 점수와 해답을 찾지 못한 답답한 마음은, 짝을 이루어 차곡차곡 가슴속 깊이 쌓여갔었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을 무렵 등나무 아래서 바라본 사이사이 파란 하늘, 그게 가끔씩 긴 호흡으로 숨을 쉬던 유일한 순간들이었을까? 10월이 왔고, 체력도 인내도 거의 바닥이 나서 '어서 빨리 시험일이 와서 시험을 봐버렸으면 차라리 좋겠다. 어찌 되든 결론이 날 테니까' 이런 생각으로 남은 날들을 버텼다. 입시를 치렀고, 정말로 결론은 나서, 그다지 원하지도 않던 대학에 입학했다. 원서접수기간에 고3담임선생님과 1대 1 면담에서 선생님은 점수대별 입학가능학교와 학과가 있는 표에 기다란 플라스틱 자를 가져다 대시며, '여기 여기 여기'가 갈 수 있는 학과라고. 이 중에서 골라야 안정권이라고 하셨던가? 입학 전에 한 가지 한 일이 있다면, '반팅'이란 걸 했는데 '반 VS반 미팅'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여고였고, 상대는 멀지 않은 지역의 남고였다. 경복궁에서 수십 명의 '열여덟 살'들의 미팅이라니... 그렇게 나의 열여덟은 흘러갔다. 하나의 무게를 견딘 후에, 또 다른 삶의 무게가 기다리고 있음을 그때는 몰랐다.
소설혐오와 불교배척사상
이덕무의 문장을 읽어가다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그것은 소설에 대한 혐오와 증오, 그리고 불교를 배척하는 생각을 감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사고는, '숭유억불'의 사상이 지배적인 조선의 유교사회를 사는 곧은 선비로서 마땅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덕무가 만약 현대 2025년의 한국으로 와 볼 수 있다면 선비의 사고에 변화가 생길까?'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이덕무의 소설에 대한 혐오는 조금 지나칠 정도다. 당시 조선에서는 여성들이 소설에 빠져서 패물을 저당 잡혀 소설을 다투어 읽고, 집안 살림을 거들떠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혼 예물로 소설을 얼마나 많이 가져가느냐가 시댁에서 받을 대우를 결정할 정도였다 한다. 그 폐해가 적지 않았다. 정조 때는 영의정 채제공이 국법으로 이를 금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게임에 빠져들 듯 당시 많은 젊은이들과 여성들이 소설에 열광했다. 국왕이 조정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했을 정도로 사회문제가 되었다.(중략) 사태의 파악에는 늘 상황 문맥이란 것이 있다."
"고려 때는 승려를 찾아가 소원을 빌며 재를 올리거나, 심지어 기도차 찾아간 여성을 승려가 겁탈하는 추문도 심심찮았다. 이 같은 폐습을 조선에 들어 특별히 제거하자, 승려가 되어 출가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다.(중략) 도성 안에 절집을 다 헐었을 뿐 아니라 승려가 사대문 안에 들어오는 것조차 법으로 금했다."
옮긴이의 이야기대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소설의 폐해라던가 불교의 폐단에 대해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어지는 다음 글 '둘,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열여덟 살 이덕무>의 문장의 정수를 만나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