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까
미국에 가는 비행기가 지연이 되었기에,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미국에 있는 손주들을 봐주러 가신다는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할아버지께서 내 아이에게
"너희 아빠는 심심하겠다"라고 하셨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우리 아빠 죽었는데"라고 답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할머니께서 그랬구나 하시며 놀란 기색을 감추셨다. 젊은데... 라며
손주가 있으신 분들이라 아이에게 잘 대해주셨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다가
당신은 그래서 모든 것을 날을 받는다고 하셨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이라던지, 미리 알아보신다고 하셨다.
나는 샤머니즘과 멀기에, 사주라던지, 점을 봤다거나 그런 일이 없다. 믿지 않는다기보다 그걸 알아보러 가는 것조차 관심이 없다. 무관심에 가깝다.
그러나 가끔 샤머니즘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가 나에게 10년도 안돼서 남편이 죽는다라고 했다면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과연 남편을 안 만났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들었다 한들 내가 믿었을까 싶다.
남편이 암진단을 받자, 시부모님은 우리가 괜히 너희한테 애를 낳으라고 했다. 너희끼리 잘 살고 있는데 괜히 그랬나 봐라고.
남편은 무슨, 애가 그거랑 무슨 상관이냐며, 귀엽잖아 애는
그러고 말았다.
죄책감을 느낀다 한들 달라지는 것도 없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죽음에 나의 잘못이 있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