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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un 25. 2024

누가 내 콩나무 치웠어?(1)

아들학 개론- 2. 천둥 우는 날 낳은 아들인가.


 

아들은 나의 근심을 먹고 자랐다. 어린이집부터 시작된 부적응의 역사는 유치원에 이르러 꽃을 피우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활화산이 되어 폭발했다.  


 “어머니, 윤이가 또 친구에게 블록을 던졌어요. 친구가 가만히 있는데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고요. 하마터면 얼굴에 맞을 뻔했어요. 상대 아이 집에도 연락했어요. 괜찮다고는 하시는데 계속 이러면 저희가 정말 곤란해요. 잘 아시잖아요.” 


 원장은 직장일을 겨우 마치고 시든 배추처럼 쥐어짜져 아들을 데리러 간 나에게 하이톤으로 쏘았다. 벌써 세번째다. 


 “윤이가 지능이 떨어지거나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병원에 가서 괜찮은지 검사받아 보시는 게 윤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요?” 


 나는 가슴에 불이 치밀었다. 바쁜 원장이 뭐하러 나를 붙들고 매일 이런 대화를 하겠는가? 나를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한 작은 존재에 대한 원망이었다. 살면서 남에게 폐 끼치고 말 듣는 게 싫어서 돌다리가 부서져라 두드리는 새가슴으로 살았왔다. 아이 하원 할 때마다 유치원 출입문 앞에서 한 시간씩 무차별 훈계와 종용의 융단 폭격을 받으며 다른 엄마들의 시선을 의식할 땐 쥐구멍이 아니라 좁쌀만큼 작아져 신발장 안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원장님, 제 아이는 제가 더 오래 키웠고 잘 압니다. 우리 아이는 선생님이 생각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 좀더 사랑으로 보살펴 주실 수는 없나요? 제 교육철학에 따라 자유롭게 키우도록 존중해 주세요.” 


 드라마에서 엄마는 준비된 듯 당차게 자신의 교육관을 펼치는 반격도 잘 하더만 현실은 영 다르다. 숨이 턱 막히고 머리 속엔 내가 소신 발언을 했을 경우와 아닐 경우에 일어날 일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재빠르게 돌아간다. 나는 “우리 아이가 좀 그렇지요, 제가 집에서  더 지도하겠습니다” 만 반복하고 아이를 데리고 돌아선다. 


 수저통을 잃어버린 것도 수 없고 놀이터에 저 녀석의 점퍼를 다시 가지러 뛰어간 것도 여러 번이다. 아들은 친구를 좋아해서 졸졸 쫓아다니지만 집에 오면 친구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도 모르는 놈을 세 시간을 쫓아다녀서 ‘저 형 싫어!’ 하고 울면서 집으로 뛰쳐 들어가게 만들어?  


“어머니, 책도 좋지만 윤이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하지 않겠어요?” 


 그나마 책을 좋아하는 윤이지만 그마저도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마치 엄마가 멸치 볶 듯 아이를 책으로만 밀어붙여 책귀신을 만들었다는 듯한 선생님의 말에 나는 아무 대꾸할 수 없었다. 누군들 싹싹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아들을 만들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운명으로 나에게 떨어진 아들은 책과 나무 블록 밖에는 받아줄 친구가 없는 아이였다. 내가 잘못 키운걸까. 반성과 걱정의 일기가 계속 되었다. 


  나의 친정아버지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퇴직하셨다. 아버지는 윤이에게 바둑을 가르쳐주고 갈 때마다 어설픈 대국을 했다.  


 “애들은 다 각자 그릇이 있고 때가 있는 거야. 내가 학교에서 무수히 애들을 보고 그 애들이 어떻게 컸는지 봤잖아. 초등학교 때 백점 맞고 악기 잘 하고, 운동 잘 하고 못 하는 게 없다 싶었던 애들이 계속 잘 하는 경우가 참 드물어. 오히려 잘 못 했던 애들이 자기 개성을 찾고 노력해서 나중에 보면 잘 돼 있을 때가 많지. 인생은 그렇게 알 수 없는 거야. 네가 욕심 부리고 열심히 한다고 애들이 잘 클 거 같지? 특히 남자애들은 철이 드는 때가 늦게 오고 자기의 쓸모는 천천히, 스스로 찾는 거야. 두고 봐, 윤이가 열두어살 되면 확 달라질 거야. 엄마는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돼.”  


 아버지는 윤이가 바둑을 점점 잘 둔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이세돌도 AI한테 지는 시대에 바둑기사 될 것도 아니잖아요. 아빠는 옛날 사람이라 요즘 애들 자라는 거 모르니까 저런 말씀을 하시지.’  


 친구가 좋아하던 말던 마냥 좋아서 쫓아다니는 병부터 친구에게 블록을 던지거나 뜻대로 안 되면 소리를 꽥 지르는 등 증상은 다양했다. 원장 선생님이 굳게 믿고 밀어부쳤던 병원과 약도 윤이에겐 별 효과 없었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밥맛이 뚝 떨어지는 부작용만 남겼다.  


  5학년이 되어 윤이에게도 처음 친구가 생겼다. 전학 온 아이, 태준이였다. 태준이는 가무잡잡하고 홀랑한 몸에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학원은 다니지 않았다. 아들도 많은 학원을 다니지 않아 둘은 시간이 많았다. 점심시간에는 온 학교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했다.  방과 후엔 태준이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고 만화를 보거나 비디오 게임을 했다. 윤이의  일방적인 수다와 짓궂은 장난에도 태준이는 씨익 웃거나 ‘하지마.’ 할 뿐이었다. 나는 안심이 되고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이 보시면 혼날텐데, 넘어지면 다칠텐데. 하필 새로 ‘걸린’ 친구가 놀기만 하는 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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