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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ul 02. 2024

누가 내 콩나무 치웠어?(2)

아들학개론- 2. 천둥우는 날 낳은 아들인가


“엄마, 태준이는 학교에서 달리기 제일 빨라. 6학년 형도 이겨. 근데 고조선을 광개토대왕이 세웠대.” 


 아들은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예전에 ”그 애랑 짝궁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선생님께 부탁했다는 다른 엄마의 얘기를 들었을 땐 ‘어쩜, 어른이 되어 갖구 이기적이고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네.’ 하고 혀를 찼다.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어떻게 낯 뜨겁게 저런 말을 드러내서 한단 말인가. 한편으론 혹시 내 아이가 엄마들의 기피대상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아이에게 그런 친구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 엄마들도 오죽하면 그랬겠어. 코피 흘리며 공부하기도 바쁜 시간에 ‘그런 애들'이랑 놀다가 나쁜 물이 들면 어떡하나 얼마나 걱정이 됐겠어. 

 윤이에게 친구가 많았다면 나도 ‘대놓고’는 아니라도 “그 친구보다는..” 이나 “그 친구가 안 좋다는게 아니라..” 하며 의심의 모래를 뿌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 생활에 대해 집에 와서 이야기하는 일이 처음이었다. 태준이는 사회성 부족한 아들을 친구로 받아준, 온 우주에 유일하고 아들을 구해준 은인인 것이다. 


 “태준이는 참 재미있는 친구구나. 얻어먹지만 말고 너도 맛있는 것 사 주고 그래. 그런데 넘어지니까 너무 뛰어다니지 마.” 


  다른 반이 되어서도 아들은 쉬는 시간마다 태준이 반 앞에 가서 기웃거리고 수업이 끝나면 또 그 집에 가서 놀며 지냈다. 2학기가 되자 태준이는 아빠를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게 되었고 아들과는 헛헛하게 헤어졌다. 


 아들은 새로운 지역의 중학교에 홀로 진학하게 되었다. 13년을 그 지역에서 살았던 친구들은 이미 친구들이 있었고 최소한 ‘친구 사귀는 나만의 필살기' 몇 개 정도는 섭렵한 아이들이었다. 30명의 남자애들이 우글우글한 정글 같은 교실에 아는 친구가 없었다. 잘 하는 것도 뚜렷하지 않고 눈치도 부족한 아들은 안타깝고 외로운 분투를 하고 있었다. 때론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방법으로, 때론 어디든 머리를 들이밀어보는 철면피 정신으로. 하지만 모두 변변치 않았다. 


 처음 간 학급 현장체험학습은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전체를 인솔하는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 현장학습은 조별로 아이들이 알아서 장소에 대중교통으로 찾아가야 한다. 아침 8시에 역에서 만나 지하철을 타고 대학교 탐방을 간다고 했다. 보내 놓고 우아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데 12시쯤 윤이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 와있었다.  


 “엄마, 애들은 지네끼리 놀다가 간다고 가버렸어. 나는 이제 집에 어떻게 가?” 


 울먹하는 목소리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아들은 혼자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없다. 저대로 우주 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심장이 두 방망이질 쳤지만 겨우 가라앉히고 지하철로 오는 방법을 알려주고 나도 헐레벌떡 챙겨 입고 나갔다.  


 ‘에잇, 냉정하기가 남극 얼음대륙 같은 놈들, 친구 좀 챙겨주지. 이 놈은 왜 이렇게 주변머리가 없어. 다들 논다고 하면 어디든 좀 껴보지.’ 


중얼중얼 분통이 터졌지만 나도 아들이 애들 틈에 끼는 게, 그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체육대회를 하고 오는 윤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신발 던지고 들어오자마자 “나 달리기했다.” 한다. 반 대항 계주 경기를 하는데 윤이반에 제일 잘 달리는 아이가 학교대항 하키경기를 가서 다음으로 기록이 좋은 아들이 대신 대표로 뛰었다는 것이다. 별다른 운동을 배워보지 못한 아들이 축구 꿈나무 베프와 학교 스탠드를 겅중거리고 복도를 내지르며 했던 술래잡기가 최고의 훈련이 되었나 보다. 본 척도 않던 반 친구들은 아들을 응원해주었고 꽤 잘 뛰었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네가? 네가? 정말?”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자랑하는 아들이 뿜는 환희의 에너지에 나는 믿을 수 없이 기뻤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쑥쑥 자라 돌아오는 일들이 있다. 내가 애쓰고 공들이며 눈물로 키운 것들은 막상 좋은 것이 아닐 때도 있었다. 동화 ‘잭과 콩나무’에서는 잭이 노인에게 소를 주고 콩으로 바꿔 왔다고 엄마한테 혼이 난다. 그렇게 뒷마당에 던져 놓은 콩은 밤새 자라 콩나무가 되고 새로운 모험과 가능성을 열어준다. 만약 잭의 엄마가 콩밥이 싫다고, 콩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콩알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면 잭은 거대한 콩나무에 올라가 거인의 성에 갈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걱정된다는 이유로 윤이에게 놀기 좋아하는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면 아들은 계주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엄마는 걱정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아이의 기회를 버리게 하는가.  


 내가 만난 부모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자녀들을 키웠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을 들여  몸에 좋은 것을 먹이고 최고의 학교와 학원을 보낸다.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아이를 위해 진로를 연구하고 중간고사 요점정리를 해 주고 아이를 채근해 준다. 사회성이 좋은 엄마들은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와 유익한 정보를 물어와서 아이에게 좋은 성적을 내게 해주려고 한다. 모두 사랑이고 눈물겹다. 하지만 부모의 지극한 사랑은 항상 아이들에게 좋은 결과만 가져올까? 


 사랑과 우려와 불신이 뭉쳐진 감정으로 내 아이 앞의 장애물을 치워주는 일을 나도 많이 했다. 좋은 대학에 못 갈 걱정에 과목별 학원을 물색하고 아이를 보냈다. 물론 내 모든 노동을 쥐어짠 월급도 함께 보낸다.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나 자존감 떨어질까 봐 한달음에 학교에 달려가서 내 아이의 존재감을 일깨워주고 아이의 쳐진 어깨를 세워준다.  


 아이 앞의 장애물을 치우므로써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보석같은 기회를 버리게 하는걸까? 내 아이의 그 장애물은 진짜 장애물이었을까. 어쩌면 아이가 한걸음 듣고 올라설 디딤돌은 아니었을까. 지금을 살아가는 부모의 눈으로 장애물을 가려내고, 미래를 맞이할 아이에겐 넘어지고 생각하고 배울 틈을 주지 않는다. 넘어진 적이 없는 아이가 마주할 앞으로의 인생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란 없을 것인가. 


 나는 얼마나 많은 장애물과 디딤돌을 거쳐 지금에 왔을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쪽지시험들이 이어지는 학창시절,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복도에 부끄러운 전교 등수가 걸리기도 하고 성적에 따라 손바닥을 맞았다. 중학교 때는 답안지 마킹을 잘못해서 터무니없는 점수를 받고 생이 끝난 듯한 기분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친구들이 은근히 왕따를 시켜 누구에게 말 못하고 나 혼자 부글부글 속이 썩었던 적도 있다. 뼈아픈 실수로 배웠기 때문에 답안지 마킹하는데 더 신중해졌고 시험 성적이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 밤새 공부해 성적을 올렸다.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더 사회적인 모습으로 나를 다듬고 남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 그 장애물들을 힘겹게 넘으니 나는 높은 산에 오른 듯 다른 세계가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걸림돌은 장애물이 아니라 내가 성장하기 위해 딛고 서야하는 디딤돌이었다.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나의 부모님은 곁에서 위로해주고 안타까워했지만 대신 해 줄 생각은 못 하셨던 것 같다. 문제를 헤쳐 나가고 포기와 적응을 결정할 최종 책임자는 나였다. 하지만 지금의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일선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마음이 큰 것 같다. 자신들이 자라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군가 도와줬으면 했던 마음이 투사되는지 모른다. 그 결과는 아이에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전우들 앞에는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선물처럼 펼쳐질까. 그 중에는 우리가 이불 속에서 울 사건도 있고, 친구에게 전화해 한바탕 하소연 해야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들은 잭의 콩처럼 당장은 쓸모없고 손해같지만 아이의 나중에는 큰 세계로 나가는 콩나무가 될 것이다. 내가 내 생활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만의 문제해결법을 찾아 터득해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는 내 일을 차근차근 하려고 한다. 


 이제 아들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다가온다. 우리는 묵묵하게 견디지만 기대하며 그 산을 넘을 것이다. 조금 늦게 올 아들의 봄날을 나는 응원하며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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