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와 기차
*2권을 시작하면서:)
무언가를 기록할수록 난 주변 자극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록을 하면 할수록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도 좀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
함께하는 시간에 '아 이건 기록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사람.
게임에서 퀘스트를 깨듯 모두 앞을 보고 살아가는 삶에서
지금 여기에 더 머무르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 그리고 그런 사람과 함께 있는 나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글쓰기는 나를 '지금 여기'에 더 머무르게 한다.
어느 순간에 좀 더 머물고 싶을 때마다 글쓰기를 찾게 된다.
[수학 문제를 풀어보세요]
서로를 향해 시속 40km로 달리는 두 대의 기차가 있다.
기차는 200km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두 기차는 동시에 출발하는데, 두 기차 사이에서 시속 70km로 비둘기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두 기차가 충돌할 때까지 비둘기는 달리는 두 기차 사이를 왕복하며 이동한다.
이 비둘기는 총 몇 km를 날게 될까?
.
.
.
.
.
문제를 처음 접하면 대부분 비둘기가 몇 번 왕복했는지를 따지게 된다.
복잡한 궤적, 계산해야 할 수많은 숫자.
하지만 이 문제는 단 하나의 관점만 제대로 이해하면 단순해진다.
비둘기가 날았던 총시간은 얼마인가?
두 기차는 시속 40km로 서로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200km 거리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에 만나는 데까지 총 2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러니 비둘기는 2시간 30분 동안 날았을 것이고, 날아간 총거리는 70 x 2.5 = 175km가 된다.
중요한 건 방향도, 반복된 움직임도 아니다.
핵심은 시간이었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는 걸 상담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됐다.
기존의 상담 이론은 종종 사람 행동의 '원인'을 추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가 지금 이런 상태가 된 건 어린 시절 때문이고, 부모의 양육 때문이며, 자신도 모르게 학습된 무기력이나 회피 때문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분석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과거는 이미 벌어졌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의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비둘기와 기차 문제에서처럼 헤매게 되는 경우도 참 많다.
하지만 우리가 다뤄야 하는 건 '지금 여기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두 가지 긴장을 안고 산다.
하나는 Av(Avoiding vector), 회피요소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능한 나, 미움받는 나, 혼자 남겨진 나.
또 하나는 Sk(Seeking vector), 추구요소로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이다.
사랑받는 나, 인정받는 나, 이해받는 나.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기능하며 그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신만의 생존전략, St(Strategy vector)을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는 먼저 공격함으로써 거절당할 위험을 차단하고, 또 누군가는 아예 기대를 접고 무기력해진다.
그 모든 행동은 '이상해서'가 아니라 그 두 긴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결과다.
문제 행동도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든 버텨온 방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이란 무엇일까?
이 '전략'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이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기차와 비둘기 문제처럼 '이 사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
내 피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은 각자의 문맥 속에서 살아가고, 모든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 여백을 품고 있으니까.
(이 사실이 가끔은 아주 무서워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던 이유는
행동의 '원인'을 생각하는 것이 이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해는 원인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불완전한 말과 행동 속에서 그가 지금 무엇을 지키려 애쓰고 있는지 상상해 보는 일.
그 시간 안에 머무는 그의 방식과 진정 원하는 것을 헤아려보는 일이다.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더라도
그 사람의 전략과 두려움, 열망의 균형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글쓰기를 하며 나와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오래 붙잡고 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