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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결혼 소식 들은 썰

샤갈, 그리고 전환이론

by 뿡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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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샤갈 전시에 다녀왔다.

샤갈의 작품에는 유난히 하늘을 나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공중에 떠 있는 연인들, 바이올린을 든 악사.

전시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샤갈의 고향 러시아 비텝스크에서는 '하늘을 난다'는 표현이 감정이 북받치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뜨는 순간들.

땅에 제대로 발붙이지 못하는 순간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런 말을 한다.

"하늘을 나는 것 같았어."

기쁘다는 말보다 더 벅차고, 행복하다는 말보다 더 벗어난 상태.

말로 잘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을 대신해주는 비유.

(어쩐지 샤갈의 하늘을 나는 장면에는 단지 기쁨만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다운로드.jpeg Marc Chagall, The Birthday (1915)


그림을 보면서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감정이 북받쳤던 때가 언제였지?'

그러다가 그냥 생각이 흐려져버렸다.


그리고 며칠 전 감정이 북받치는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 중 한 명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는 특이하게도 남녀 분반이었고, 그래서 여고처럼 생활했다.

그 때 친해진 친구들이 나를 포함해 총 9명.

올해로 11년지기다.

1년에 두 번 날짜를 정해 다같이 만나며, 만나면 쉴틈없이 달달하고 짭짤한 것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 헤어진다.

인원이 많아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먼저 달려와줄 것 같은 친구들.

그 중에 한 명이 올해 가을에 결혼을 하고 유부녀가 된다.


사실 자주 하던 이야기다.

'우리 중 누가 가장 먼저 시집을 갈까?'라는 주제는 만나면 늘 나오던 주제다.

또 나는 수없이 상상했다.

꽃다발을 들고 신부가 입장할 때, 특히 부모님께 인사할 때 울지 않으려고 꾹 참는 내 모습도 함께 상상했었다.

그런데 막상 진짜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갑자기 감정이 너무 북받쳤다.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퍼서가 아니라 어쩐지 우리가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진짜 시간이 흘렀구나.

같은 교복을 입고 수다 떨던 아이들이 이제는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는 시간이 되었다.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진짜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은 시간이 흘렀다는 걸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알아차릴 때 오는지도 모른다.

샤갈이 어린 시절에만 느낄 수 있던 고향 마을의 풍경을 하늘을 나는 동물들로 표현한 것처럼.

또,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아내를 떠올리며 하늘을 나는 형상으로 표현한 것처럼.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알게 해주는 사건은 늘 대단하지가 않다.

친구의 결혼처럼 삶의 다음 챕터를 여는 소식 하나.

그렇게 별것 아닌 듯 툭 던져진 소식이 나를 아주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심리학자 Nancy Schlossberg는 삶의 어떤 사건이 우리에게 '전환'이 되는지는 그 일이 얼마나 '크고 중대한 사건이냐'보다 그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친구의 결혼은 겉으로 보면 내 인생을 바꿔놓는 사건은 아니다. 그녀가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일일 뿐이고, 우리는 앞으로도 여전히 친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의 끝자락에서 서서히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처럼 전환 이론은 삶의 전환이란 단지 변화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를 내가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정체성과 감정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샤갈의 작품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작품 속 순간들 역시 삶의 전환 속에서 마음이 잠시 중력을 잃고 떠오른 것 같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삶이 조용히 변하고,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실감하게 하는 장면.

그 벅찬 변화의 순간을 우리 모두는 때로 조용하게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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