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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직 Good이야

무표정 실험

by 뿡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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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 중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인데 그가 조용히 물었다.

별다른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고, 특별한 일도 없었다.

나는 그냥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답했지만, 여전히 그는 내 표정을 살핀다.

마치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먼저 눈치채고, 나보다 먼저 설명하려는 사람처럼.


내 남자친구는 내가 무슨 말을 하지 않을 때 민감하게 반응한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내려간 것인지, 말끝이 평소보다 짧았는지.

그는 이런 것들을 유난히 잘 알아차린다.

나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상태를 누군가가 먼저 감지하고 묻는다는 경험은

가끔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충분히 감지되고 있다는 느낌이 주는 안정감이라고 할까.


사람 사이의 연결은 단절되는 순간보다 그 단절이 감지되지 않는 순간이 더 위태롭다.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기분.

서로를 향해 말을 건넸지만, 정작 감정은 엇갈려 있다는 기분.

회복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




이런 관계 속의 불일치는 실제로 아주 어릴 때부터 경험된다.

심리학자 Ed Tronick이 진행한 Still Face Experiment(무표정 실험)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정서적 연결이 얼마나 미세한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험은 아주 단순하다. 엄마와 아기가 마주 앉아 눈을 맞추고 웃으며 상호작용한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는 얼굴의 표정을 지운다. 눈은 뜨고 있지만 감정이 완전히 빠져나간 얼굴로 말이나 반응도 멈춘다.

그 순간부터 아기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한다. 웃어보기도 하고, 몸을 앞으로 내밀고, 손을 뻗고, 소리를 내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면 아기는 조금씩 혼란스러워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이런 행동들은 우연이나 반사적인 반응이 아니다. 아기는 생후 몇 개월 만에 사회적 상호작용의 규칙을 이미 학습하며, 그 흐름이 끊겼을 때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이 실험의 과정을 세 단어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1. Good: 정서적 연결이 잘 이루어지고 있을 때

2. Bad: 일시적으로 그 연결이 끊기지만 다시 회복될 수 있을 때

3. Ugly: 그 단절이 회복되지 않은 채 방치될 때


아이들은 Good 상태에서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기대하고, 그 흐름이 끊기면 적극적으로 다시 연결하려 한다. Bad 상황에서는 정서적 불안을 겪지만 엄마가 다시 반응하면 대부분 빠르게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Ugly는 다르다. 연결을 회복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결국 정서 발달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이 실험은 인간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인지, 그리고 정서 발달이 얼마나 관계 속 상호작용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반응을 바라고, 그 반응이 없을 때 혼란을 느끼고, 상대에게 다시 말을 걸거나, 눈을 마주치려 애쓰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이 서로를 원하는 것 같다.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원하고, 내 마음이 닿기를 바라고, 타인의 마음도 나에게 다가오기를 바란다.

그 욕구는 생후 몇 개월 된 아기의 눈빛 안에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의 마음 안에도 동시에 존재한다.

정서적 연결이 완벽하게 유지되는 관계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끊김을 인식하고 다시 이어가려는 시도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시도가 의미 있는가'이다.


상처는 단절에서 생기지만

관계는 회복에서 자란다.

지금이라도 다시 연결할 수 있다면, 그건 아직 Goo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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