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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는 사랑이 뭔지 몰라요

투사에 대하여

by 뿡어


요즘 밖에 나가면 러브버그라는 이름의 벌레가 잔뜩이다.

정확한 이름은 Plecia nearctica.

미국 남부에 주로 서식하는 이 작은 곤충은 초여름, 가을 즈음이면 도심의 길거리, 공원, 심지어 자동차 앞유리에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보면 다소 이상하게 느껴진다.

두 마리의 벌레가 배를 맞댄 채 붙어 있다.

날면서도, 나뭇가지에 앉아 쉴 때도, 심지어 죽을 때조차도 붙어 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러브버그'라 부르기 시작했다.

꼭 사랑하는 연인처럼 다정하게 붙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브버그는 짝짓기를 위해 붙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수명은 길어야 5일에서 7일.

그 시간 동안 짝을 만나 짝짓기를 하고, 그 임무를 마치면 곧 생을 마감한다.

사람들은 그 짧고 응축된 삶의 방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그중 하나다.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은 종종 우리가 해석한 방식으로만 존재한다.
러브버그는 아마도 그저 본능에 따라 짝을 찾고 유전자를 남기려는 일에 몰두할 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붙어 있는 모습에 연인의 이미지를 투영한다.

본능적인 생존 행위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투사(projection)'라고 한다.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이나 욕망, 혹은 의미를 외부 대상에 투영하여 그것이 원래부터 그 의미를 지닌 것처럼 해석하는 방식이다.

때로는 오해로 이어진다.

러브버그가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도 그런 투사일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한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을 때의 목소리, 말없이 지나친 눈빛, 우연히 동시에 멈춘 발걸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순간들에 의미를 얹는다.

어쩌면 그 덕분에 우리는 일상의 순간들을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러브버그는 그런 면에서, 우리의 해석을 담은 생물이다.
보는 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존재.



러브버그의 생은 짧다.

길어야 일주일, 대부분은 사흘 정도가 전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짝짓기 상대를 찾고, 붙어서 이동하고, 알을 남기고 생을 끝낸다.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 보면 너무도 덧없는 생이다.

짧은 만큼 그들이 붙어 있는 시간이 더 간절하게 보인다.
붙어 있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살아가다가, 함께 있는 상태로 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그 삶을 보며 어떤 감정을 꺼내 쥔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것 같지만, 그와 비슷한 감정이다.

정성과 간절함과 짧은 생의 미련 같은 것.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과도한 해석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의미를 붙이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우리 인간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러브버그는 아마도 사랑이 뭔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는 건 삶에서 그리 오래가지 않는 무언가를 끝까지 지켜보려는 마음 아닐까.
그건 어쩌면 사랑과 아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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