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장끼(아빠), 까투리(엄마), 꺼병이(새끼)... 그리고 나
알고 있어도... 잠시.
꿩으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울음소리가 "꿩~ 꿩~" 울기 때문이다. 실제로 들어보면, 금속 양동이를 두드리는 것처럼 굉장히 높은 쇳소리로 운다. 흔히 얼굴이 붉고, 빛깔이 화려하다. 알록달록한 수컷을 '장끼', 단색의 보호색을 띠는 암컷은 '까투리'라고 부른다. 새끼는 병아리처럼 생겼지만, 다리가 길어서 매우 어색하게 보이는데, 이를 '꺼병이'라고 한다. (네이버 자료)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이 초록 지구별에서는 어떤 호흡을 하든지 직립보행 하는 것, 나는 것, 기는 것, 헤엄치는 것 그리고 서 있는 나무나 풀조차도 다 제 나름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때로는 우습게, 가끔은 경이롭게.
봄날.
나들이 나온 장끼(아빠)가 나무 덤불 사이에서 서성댄다. 그 장끼는 번지르르한 양복을 멋지게 빼입었는데, 시골 총각이 멋 낸 것 같이 색이 알록달록하다. 엉덩이 살이 올랐는지 유행을 타지 않는 화려한 작년 양복이 탱탱하게 낀다. 장끼는 불안장애 증상이 있는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늘 눈치 보듯 주위를 살핀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다. 덤불에 머리만 처박으면 안 보인다. 자기가 안 보이면 남도 안 보인다. 참 편하게 산다.
장끼 울음소리는 항상 첫 음을 너무 높게 잡는다. 타고난 음치다. 산자락의 모든 것은, 살았거나 죽었거나 관계없이,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들짝 놀라 날고, 뛰고, 기고, 울고불고... 난리다. 그렇게 장끼는 울음소리로 고요한 산자락을 한 번씩 뒤흔든다. 장끼(남)가 까투리(여)에게 어찌 수작을 걸어 보려면, 목소리는 내지 말고 화려하게 빛나는 꼬리와 양복만으로 접근해야 한다.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까투리는 그런 장끼의 겉모습에 반하여, 정신 못 차리고 쉽게 넘어온다.
그러나 세상에 쉬운 것이 없다. 쉽게 반한 그 대가로 까투리(엄마)는 봄에 알을 낳고 품어야 하며, 알에서 태어난 꺼병이(새끼)를 혼자 힘들게 키워야 한다. 전문용어로 독박 육아이다. 육아를 하려면 항상 부지런해야 하니, 까투리는 산후 우울증도 모른다. 물론 산후 도우미 혜택도 모른다.
자연에서 육아하는 어미들 모두가 그렇지만, 까투리도 지구별에서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한다. 경이롭고 위대한 일이다. 자연에 있는, 새끼들을 키우는 모든 어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우리 여주인공 까투리 여사는 지난해, 알에서 아홉 마리 꺼병이를 얻었다. 봄날 춘곤증도, 산후 우울증도 느낄 사이도 없이 혼자 고생하며 키웠다. 아홉 마리 새끼를 키우는 것이 힘들 때마다 까투리 여사는 ‘어찌 이리 힘이드나... 아홉 마리라서 아홉수인가...’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그리고 결심도 단단히 했다. ‘이제는 장끼(남)의 겉모습에 안 속는다’라고 주문처럼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장끼의 멋진 겉모습 등장에 또, 그냥 바로 쉽게 넘어갔다. 올해는 그 장끼와의 자식 농사도 풍년이라, 무려 열한 마리다.
장하다, 우리 까투리, 만세!!!
산자락 길을 걷고 있었다. 저만치 앞에 까투리 가족이 이동 중이다. 엄마 까투리가 열한 마리 새끼 꺼병이들을 데리고 어디를 간다. 대체로 꺼병이들은 어미 뒤를 일렬로 줄지어 졸졸 잘 따르나, 호기심이 많은 놈은 꼭 있는 법이라, 한 놈이 혼자 뒤처져서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닌다. 뒤돌아선 엄마의 경고 소리에 후다닥 제자리로 돌아오기는 한다. 이렇게 엄마 까투리는 꺼병이들을 키우느라 하루하루 힘든데, 아빠 장끼는 무슨 볼일이 그리 많은지, 맘껏 멋 내고 밖으로만 열심히 싸돌아다닌다. 화려하고 꽉 끼는, 작년에도 입은, 양복은 해가 바꿔도 해지지 않는다. 명품 원단 때문인지, 이른 봄 되니 더 화려하게 빛난다. 이런 모습이 눈꼴셔서 까투리가 먹이라도 좀 구해오라고 했더니, 남편 장끼의 대답이 가관이다. ‘봄이라 사방 천지에 먹을 것이 깔렸는데, 왜 우리 집은 먹을 거 갖고 잔소리하냐’라고 대꾸한다. 까투리 여사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긴 하나, 한바탕 심각한 부부싸움을 했다. 그래도 아빠 장끼는 가족을 내팽개치고 꿋꿋하게 밖으로 싸돌아다닌다. 요즘 어미 까투리는 남편 장끼 웬수를 찾지도 않지만, 남편 보기가 더 힘들어졌다. (참고로, 번식기에는 가장 힘세고 나이 든 수컷이 여러 마리 암컷을 거느린다. 우리 까투리 여사는 이 자연의 법칙을 모른다. 영원히.)
이맘때쯤이면, 동네 사람아재들이 힘든 농사일 하고 나서, 누가 소집도 안 해도 모여 막걸리 한 사발 한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책임 못 질 말들을 마구 한다. 심지어 ‘남자로서 장끼가 참 부럽다’라고 장끼의 삶을 예찬한다. 동네 사람아재들아, 분명히 술자리 이야기는 소문난다. 방심은 금물, 적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
내가 이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 까투리 가족을 따라다니며 관찰한 결과는 심각했다. 아빠 장끼도 엄마 까투리처럼 꺼병이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데, 어찌 저리 싸돌아 다니는지... 큰일이다.
싸돌아 다니며, 무엇을 하는지 좀 더 심도 있는 관찰을 하려고 몰래 장끼 뒤를 따라간 적도 있다. 근데 눈치는 빨라서, 멀리도 못 날면서, 날아가 숨어버리니 포기했다.
며칠 전, 뒷산 길에서 장끼를 만났다. 장끼는 혼자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었는지가 언제인데, 한참 뒤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다. 장끼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꽤 ㅇ~"소리 지르며 날아오른다. 그러나 푸드덕 푸더덕 소리만 요란했지 높게도, 멀리도 날지는 못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는 난다. 내 눈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엉덩이만 보인다. 그런 뒷모습에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너는 놀랐는데, 내가 웃어 미안하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근처 덤불에 머리 박고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는 그 장끼를 또 만났다. 무거운 몸 때문에 멀리 못 날고 여기에 있었구나. 어쩐지 혼자 돌아다니며 잘 먹더라... 잘 날려면 체중을 줄여야 한다. 나는, 또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장끼 곁을 조심스레 지나며, 한마디 했다.
‘장끼야, 잘살아라. 까투리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자식도 많이 퍼트리고.
그리고 꺼병이들에게 아빠 얼굴도 가끔 보여주자, 물론 서로 관심도 없겠지만.’
뱀꼬리: 1. 위 내용에는 유전학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는 것도 있음.
2. 사진은 네이버 나무위키 등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