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 그들, 사랑이었을까? 아마도......
최근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오래된 애니메이션 중 ‘추억은 방울방울’을 보았다. 초등학교(초등학교) 5학년 때 옆 반 학생이며, 야구부 투수인 히로타 슈지가 여주인공 타에코와 사귄다고 소문만 나다가, 동네 골목길에서 둘의 우연한 만남. 히로타가 얼굴이 빨개지며 주인공 타에코에게 건네는 첫 한마디,
“비 오는 날, 흐린 날, 맑은 날 중에 어떤 날을 제일 좋아해?"
나는 어떤 날을 좋아했을까? 아니, 풋풋한 첫사랑의 첫마디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 사람을 만났겠지
내 곁을 무심히 지나갔겠지, 수많은 인연 중 하나가 그렇게 지나갔겠지.
지금 나는 과거와 같고, 당신은 현재와 같다.
세상은 불공평할지 모르나, 누구에게나 사랑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사랑, 그 자체는 너에게도 있었고, 나에게도 있었다. 사람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있는 것에는 사랑이 있다.
물론 보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에게도 사랑이 있다.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도 서로 사랑한다. 곁에 같이 있는 나무, 길 건너편 나무도 서로 사랑한다. 아무도 모르게 바람에 고백도 전하고, 밀어도 나눈다. 그리고 너무 좋으면, 그리우면 은밀히 옆으로 가서 혹은, 길을 건너와서 서로 껴안는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만약에'라는 말이 있다. 그럴리는 없지만 만약에, 누구에게라도 들키면 그대로 굳어져 하나가 된다. 이것은 사랑의 마법이고 법칙이다. 각각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나, 합쳐져서 한 나무가 된다. 그것이 연리목連理木이고, 연리지連理枝이다. 사랑에는 이런 제약이 있다. 들켜서도 안되고, 뒤 돌아보아도 안 되는 이런 것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길고양이의 사랑이다. 인간의 감정과 잣대로 보면 분명 사랑이다.
티키(남)와 막순이(여, 막수니) 이야기이다.
그해 이른 봄, 티키는 1살 정도이었고, 막수니는 9개월 정도였다.
티키는 지난 늦가을부터 심한 허피스(감기)에 시달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몇 번의 항생제와 맛있는 간식뿐이었다. 추위가 시작될 무렵, 티키가 밥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내 경험으로 안타깝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해 1월. 티키가 나타났다. 약간 야위었지만, 조금은 건강하고 안정된 모습이었다. 이때부터 막수니는 티키 오빠가 나타나면 뛰어가 반기고, 맘껏 애교 부리고, 같이 밥 먹고, 물도 같이 마시고, 종이박스에 같이 들어가 자기도 했다.
그렇게 서너 달 후, 티키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양이에겐 악마의 병인 구내염 증상까지 겹쳤다. 티키가 밥자리에서 마주치는 횟수가 줄어 갔다. 가끔이라도 티키가 나타나면 막수니는 다가가서 머리를 부딪히고, 몸을 비비고, 앞에서 발라당 애교도 부렸다, 그때처럼 항상 변함없이. 티키의 몸이 불편해서 안 좋은 냄새도 날 건데도 막수니는 티키 오빠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티키도 한 번도 불편하거나 싫은 기색이 없이 그런 막수니를 받아 주었다. 한참을 놀다가 둘이 같이 웅크리고 있다. 그때 막수니가 티키 오빠에게 소곤대는 것 같다.
”오빠에 대한 막수니 사랑, 막수니는 아주 천천히, 질리도록 천천히 입안에서 녹여 먹을 거다. “ 그렇게 막수니의 티키에 대한 첫사랑... 마음은 붉디 불었다.
며칠의 시간이 더 흘렀다. 가끔, 티키가 눈에 안 띄는 담장 위 큰 나무 아래서 혼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척 야위었다. 그 후, 티키와 막수니의 만남은 더 이상 없었다.
저 멀리 하늘에 유성이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티키는 홀로 막수니의 곁에서 고양이별로 여행을 떠났다. 세상은 끝까지 침묵했다. 빌어먹을 침묵. 고립. 빌어먹을 그놈의 사랑.
막수니가 길 한가운데서 고립을 꿈꾸는 익숙한 자세로 혼자서 웅크리고서 어둠을 주시한다. 고립을 꿈꾸는 자세다. 세상으로부터 고립, 서로의 사랑으로 고립.
시간이 흐를수록 어둠의 명도가 낮아지며 짙어진다. 가로등 불빛과 명암의 경계가 더욱 뚜렷해진다. 어둠이 떠도는 빛 부스러기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삼켰는지 고요하다. 길고양이가 나타난다... 지켜본다... 사라진다... 또, 다른 길고양이가 나타난다.
티키 오빠와 함께 할 때 막수니에게는 시간과 공간이 동일하였으나, 지금은 시간과 공간이 변하였다. 티키 오빠가 있고 없음에 따라 막수니의 시간과 공간이 변하였다. 사랑은 감정의 영역이므로 티키 오빠가 보고 싶으면, 막수니는 그곳에서 오빠를 기다린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곳에서, 그 시간에, 무작정 기다린다. 길고양이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라서 익숙한 듯 기다린다.
시간은 어둠을 길바닥에 켜켜이 쌓아두고 있다.
언젠가는 잘 지내고 있다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말이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막수니의 사랑이다.
오늘도 티키 오빠는 오지 않았다.
티키 오빠, 어디 있어...
너무 보고 싶다,
티키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