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_운문사 I

청도 선암서원에서 머물다

by 무상행

8월 한여름 날 청도에 가다.


시장터에서 구경하며 청도에서 유명하다던 추어탕으로 허기진 배도 채웠다. 너무 무더운 날씨라 일단 숙소인 선암서원仙巖書院부터 찾았다.


선암서원은 주택에 서당으로 쓰일 건물이 추가된 유형이다. 사랑채에 짐을 풀고 선암서당 쪽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서당 마당에는 오래된 배롱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여름철 백일 동안 볼 수 있는 꽃이라서 나무 백일홍이라 불린다. 고택이나 사찰에는 이런 배롱나무가 한두 그루가 꼭 있기 마련이다. 여름철 문을 열어 두거나, 들문 걸이에 문을 걸어 두고서 시원한 골바람 맞으며 오래 볼 수 있는 꽃이다. 세월이 흘러도 크게 쑥 자라지 않고 구불구불 굽이지며 자라는 것을 보며 의미를 부여하기에 좋은 나무이다. 수피를 긁으면 잎이 흔들린다 하여 간지럼나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낙비가 내린다. 시원하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서당에 내리는 비를 본다. 빗물이 마당을 적시며 번저간다.


비가 그치니 서당 문을 열고 밖을 나선다. 이 일대를 소요대逍遙臺라 부른다. 걸어 다니면 흠뻑 젖은 풀은 나의 바짓가랑이를 맺힌 빗물로 적셔 준다. 나름 반갑다는 인사이다. 언덕에 서면 동창천이 흐른다. 경치가 좋은 곳이다. 한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동창천의 흐름과 쉼을 즐긴다. 다시 서당 문을 지나 마당을 거닐며 배롱나무와 ‘선암서당’이란 현판을 이리저리 옮겨본다. 이렇게 사진 한 장 찍기 전에 눈에 들어차는 사물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제 운문사雲門寺를 찾아가야 한다. 삼십여 년 전에 가 본 곳(청도_운문사 II에서 그 당시 운문사와의 만남을 써 놓았음)이었고, 항상 마음속 깊숙이 담아 두었던 절이다. 약간의 떨림을 갖고 떠났다. 雲門...寺.

호거산虎踞山 운문사雲門寺.

오후 일정이다.

운문사는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창건되었다.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이고, 비구니 교육 전문 승가대학인 운문승가대학이 있다. 운문사는 나라 보물을 9개나 품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청도의 동쪽 운문산에 있지만, 사찰에서는 ‘운문산 운문사’가 아닌 ‘호거산 운문사’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호거산은 공식적인 산 이름이 아니며, 그 경계도 명확하지 않다. (출처 : 불교신문)

어떤 산 이름이든 그곳에 운문사가 있으면 됐다.


오후 소낙비로 운문사 건너편 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구름을 토해내고 있다.

운문사雲門寺, 이름대로 구름의 문 안에 있는 절.

범종루를 지나 말끔하게 자태를 드러내는 운문사 경내로 들어선다.


운문사는 비구니 절이다. 운문사 경내에는 다른 절집과 비교해 보면 빈 공간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어느 곳이든지 깨끗하다. 아침 일찍 싸리비로 마당을 쓰는 비구니 모습 보고 싶다.

운문사에서는 알림판으로 스님들의 수행 공간과의 경계를 구분한다. 눈길은 궁금한 호기심으로 항상 경계 안쪽을 향한다.

둘二이 아니라는 불이문不二門 또한 경계의 한 곳이다. 아래로 늘어뜨린 능소화가 불이문 옆 돌담에 무늬로 놓인다. 넓게 비어 있는 공간 때문인지는 몰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경내를 걸었다. 젊었을 때 찾은 운문사를 기억해 본다. 그때는 가슴이 뜨거웠고, 세월 밖으로 무작정 떠나곤 할 때였다.

오늘은 일단 운문사에 다가가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내일을 위해 경내에는 들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주위만 맴돌았다. 이렇게 남겨두는 것도 좋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운문사로 향했다.

입구 소나무 숲길은 젖은 솔향기로 가득 차고, 아침 햇살이 동양화 수묵의 거친 선으로 소나무 가지 사이에 쏟아져 들어온다. 산들이 둘러싼 가장 고요한 곳에 있는 호거산 운문사는 벌써 깨어 있었다. 호거산(虎踞山)의 ‘거(踞)’ 자는 ‘웅크리다’라는 뜻이다. 경북 청도군에 있는 운문사는 호랑이 품 안에 있는 사찰이다.


이른 아침인데도 경내 길은 깨끗하고 빗질 자국도 군데군데 남아있다.

허락된 곳을 이곳저곳 살펴본다.

대웅보전 뒤에는 잘 가꾸어진 꽃동산이 있다. 비구니 절이란 것이 실감 난다. 어느 곳이든 허투루 손댄 것이 없다. 색색이 어울린 백일홍 꽃밭과 이웃하는 천일홍 꽃밭이 늦여름인 지금 즐길 수 있다. 좋다. 다른 계절에는 어떤 꽃이 필까.

꽃이 떨어진 곳에는 빗질을 하지 않았다. 고마운 일이다.



운문사 홈페이지의 ‘출가이야기’에 있는, 경허스님의 제자들 중 ‘북녘의 상현달’로 불리는 水月스님 가르침이다.


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해서든 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 겨.

하늘 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둘을 세 든 지,

주문을 외든지 워째든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 겨.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로 통달한 사람이여.

꼭 ‘천주대비주’가 아니더라도 ‘옴 마니 반메 훔’을 해서라도 마음 모으기를,

워쩌깨나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맨 큼 혀야 되는 겨



선암서원으로 되돌아왔다.

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마루에 누워 있기도 하고, 주위 산책을 하며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오후에, 청도에서 되돌아왔다.

이렇게 짧은 그 여름의 청도 여행은 끝났다.



이번 여행이 끝나도 다른 '청도 운문사 II'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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