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젊었을 때 이야기
운문사(雲門寺)
아주 오래된, 젊었을 때 이야기다.
시始.
그해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여름 내내 비가 온 것 같다.
운문사(雲門寺)에 갔다. 비가 와도 운문사(雲門寺)가 그렇게 보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쯤 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햇살이 비추었다.
일주문(一株門)을 지나면서 속계(俗界)에서 진계(眞界)로 들었다.
맑은 햇살로 젖은 몸을 털고 있는 운문사(雲門寺) 경내(境內)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법당 건물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머릿속은 비워지며 눈과 귀만 열려 있는 것 같았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지나 어느 법당 옆문이 열려 있는 곳으로 갔다. 향내가 문지방을 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설주에 기대어 서서 법당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젊은 여승(운문사는 여승이 사는 사찰)이 절을 하고 있었고, 양쪽에서 두 분의 스님이 부축하면서 절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난 보았다. 젊은 여승의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절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갑자기 내 귀가 멍해지면서 세상의 소리가 막혔다. 무슨 연(緣)을 끊지 못해서 그리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고 있는지. 회한(悔恨)의 강을 건너가면서, 안타까운 세상의 모습을 그렇게 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수천 배(拜)를 하여 연(緣)을 끊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야겠지. 세상 속에서도 연(緣)을 끊을 때는 괴로워하고, 아파하는데...
진계(眞界) 안에서 속계(俗界)의 상상으로 나는 오랫동안 서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저녁 늦게 민박집에 돌아와 몸을 누이니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가 귀를 다시 막았다. 운문사(雲門寺)에서는 내 귀를 열었다가 닫았다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운문사(雲門寺)였다. 물에 젖은 솜 같이 무거운 몸을 뒤척이다 운문사(雲門寺) 곁에서 그날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며칠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치고 모처럼 아침부터 활짝 개었다.
일찍 깨어나 젖은 운동화를 신고 산길로 나섰다. 여름내 많은 비로 산사태가 난 큰길 모퉁이의 돌무더기를 타고 산으로 올랐다, 산에는 어디나 길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한참 위로 오르니 작은 길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 산허리를 돌아 걸었다. 작은 나무와 풀잎에 맺힌 지난밤의 빗물로 내 바짓가랑이는 축축이 젖었다. 곁의 나무들은 지난밤부터 사이 공간에 가득 처진 거미줄을 햇살에 말리고 있었다. 앞에 서서 거미줄을 들여다보니 중심에서부터 번지는 어지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나름 규칙이 있는 배열이다. 만일 날 벌레들처럼 그 속에 갇혔다면 분명 미로에서 길을 잃을 것 같다. 바람 한 줌 불어오니 거미줄이 햇살에 반짝이며 흔들린다. 날 벌레가 거미줄에 걸려 발버둥 치는 흔들림을 기다리고 있는 무당거미는 바람의 흔들림에 움직일 필요가 없다. 흔들림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또, 그렇게 살아간다.
나는 어떤 흔들림으로 살아가는 걸까.
다시 좁은 소롯길을 따라 걸었다. 발밑에 가득 차는 풀벌레 소리는 나의 움직임에 따라 조용해진다. 그들의 고요한 영역에서는 걷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한참을 그렇게 좁은 길 따라 올랐다. 어느 산모퉁이를 돌자마자 조금 넓어진 길에서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층층이 놓인 돌계단, 그 곁에 서있는 몇 그루의 복숭아나무,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작은 암자. 몇 겁(劫)의 시간 이동을 하고 난 후 갑자기 찾아온 것 같은 적막(寂寞)에 밀려서, 난 계단 한 편에 걸터앉았다. 계단에서는 나무 사이로 시야가 트였다. 건너편 산을 보았다. 운무(雲霧)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운무 사이로 거친 계곡물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운무가 꿈틀댄다. 운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운문사(雲門寺). 운문사(雲門寺)가 그곳에 있었다. 반가웠다. 나는 다른 산속 암자에 들었는데, 너는 그곳에 있었구나.
한참을 그렇게 앉았다가 일어서서 다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작은 마당이 조금씩 넓어졌다. 계단 끝에 다다르니 암자의 문은 정면에 바로 보였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순간, 문이 고요한 정적을 깨며 덜컹 열렸다. 마침 밖으로 나오던 여승은 나를 보고 놀랐는지 멈추어 서고, 나도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이른 아침에 젊은 남자가 바로 앞 계단 끝에 서 있었으니 꽤 놀랐나 보다. 순간이 억겁(億劫)의 시간 같았으리라.
난 마주 볼 수 없어 시선을 발아래로 돌렸다. 돌 위에 나란히 놓인 하얀 고무신이 눈에 들어왔다. 암자를 돌아 숲 속의 난 길로 더 가야 하였으나, 나는 그냥 암자에 등을 보이면서 계단을 내려오고 말았다. 계단 옆 복숭아나무의 복숭아가 조금 전에 본 뺨과 같다고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을 지나 산모퉁이를 돌 때 뒤 돌아보았다. 암자의 문은 다시 닫혀 있었다. 모든 것이 오를 때 그대로였다. 아침 햇살만 마당에 가득 내려앉고 있었다.
길모퉁이에 우두커니 서서 건너편 산을 다시 바라보았다. 피어오르는 운무(雲霧)는 조금 전 보다 훨씬 더 진해 진 것 같다. 운무 속에서 언뜻 운문사(雲門寺)가 다시 보였다. 너는 여태 그곳에 있었구나. 운무 속에 서서 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거리의 시간을 재어보고 싶다. 그럴 수가 있다면, 보일 수 있는 거리만큼 다가가 서 있고도 싶다. 그렇게 짙은 운무의 어둠 속에 서로 남겨져 있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서서 건너편 산을, 운문사(雲門寺)를 보았다.
그리고 보이는 모든 것을 그대로 남겨두고, 그곳에서 돌아왔다.
그해 내가 찾은 운문사(雲門寺)는 나에게 그렇게 왔다가 머물렀다가 또 그렇게 갔다. 지금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에게는, 그때 두고 온 운문사(雲門寺)가 아직도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있다. 꿈속 같은 곳.
그러나 나도 회한(悔恨)의 강을 건너는 언제쯤에는 다시 다가 서리라. 그때는 돌아서지 않으리라.
종終
세월이 흘러서... 결국 다시 찾은 운문사雲門寺.
젊었을 때 보았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꿈을 꾸었나 보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니
영원히 부처를 보지 못할 것이다.
......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중에서.
'금강경(金剛經)’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모든 법이 실체가 없으므로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는 공(空)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수보리: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중 한 명.
('네이버'에서)
세월이 흐르니 이제는 뭔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