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영상

묻어둔 옛 영상을 이 가을에 기억하다

by 무상행


몇 해 전, 동영상 만들기를 혼자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정진택 사진작가가 가을 사진을 보내온 적 있다. 그때는 사진 찍을 때마다 동영상 만들기에 빠져있었다. 물론 사진작가의 좋은 사진은 좋은 연습 재료였다. 그때 만든 영상을 찾아보았다. 사진들은 다 어디 가고 영상만 하나 남아있었다. 음악만 재편집하여 영상 두 개를 올려놓는다. 재생시간은 서로 다르나 사진과 글은 같다. 취향대로.

- Chris Rea, And You My Love

- J. Brahms, symphony No.3, 3 mov. (교향곡 3번 3악장)/영화에서는 프랑수아즈 샤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영화(잉그리드 버그만, 이브 몽땅, 앤서니 퍼킨스)로 만들었고, 그 속에서 나오는 브람스 곡.

아래 글은 영상에 얹은 글을 그대로 적었다.

(음악을 크게 들으면 더 깊은 가을 속으로...)



Chris Rea, And You My Love



억새줄기 같은 바람 불던 날

산 오르다.


바람은 차가운 파도소리로 산등성이를 넘고

굴참나무는 크게 흔들리다.


낙엽 날리다.

산, 어디에나 바람 고요한 곳은 있기 마련,

소리로 길 찾다


쉬어가다.

이제야 새소리 듣다.


다시 걷다.

아무도 없으니 발걸음은 한없이 느려지다.

춘향가 한 대목을 멋대로 불러보다.


'갈까보다 갈까부네 인을 따라서 갈까부다'

멀리 산봉우리 보인다.

까마귀 날고 있다. 울음소리들이 잿빛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고 산을 맴돌다.

'천리라도 따라가고 만리라도 따라 나는 가지'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모두 다 쉬여 넘는...'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 사냥매


소리마름에

바람을 몇 겹으로 개어 놓고 산 내려오다.


하늘 그물보다 촘촘한 그대의 그물에 걸리다

벼락이라도 한 줄기 잡고

파란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고 싶다.


항상

호수의 안개처럼, 너는

없는 듯 있었고 있는 듯 없었다.

가끔 너는 분홍 물고기처럼 오가다가

문득

너는 그놈이 보고 싶다고 했지


그런 날에는

하늘의 매듭 풀리며

눈비가 왈칵 쏟아지지, 내 눈에서도


그리우면 강가 걷는다.

방향 잃은 바람이

갈대줄기에 모아둔 울음소리 내뱉는다.

조약돌 문지르니

강에 묻어둔 울음소리 내뱉는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다, 내 사랑.


돌아오면서

단풍물에 젖은 머리를 털었다

옷에 묻은 쓸쓸함도 같이 털었다.

J. Brahms, symphony No.3, 3 mov.





세상 일이든 사랑이든


두려워서 떠나는 사람,

떠날 곳이 없어 홀로 남겨진 사람,

모두 가을 같은 사람이다.


누구나 바람소리만으로도 비어 가고 있는 것을 안다.

떨어지고 사라짐이 무엇을 위함이더냐

다시 오기 위함인 줄 몰랐단 말이냐

어리석은 사람아

답답한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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