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보내기가 싫다

이쯤에 도토리 이야기라도 만들자. 기억하자, 이 가을을...

by 무상행

늦가을 하늘. 시퍼렇다


이런 날,

비로봉에 묶여있는 멍텅구리 구름 배는

하늘 저편에서

바람이 밀어도, 은빛 멸치 떼가 몰려와도 움직이지 않는다

검푸른 하늘 절벽,



도토리.


참 재미있고 흥미로운 열매이다.


겨울잠 자는 동물은 겨울잠을 자기 전에 먹이를 많이 먹어 에너지를 비축한다. 다람쥐는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도 수시로 깨어 여기저기 묻어둔 먹이를 꺼내 먹는다. 곰이나 다람쥐뿐 아니라 멧돼지, 토끼, 새들도 도토리를 먹으며 긴 겨울을 보낸다.


도토리는 참나무라 불리는 나무들의 열매이자 씨앗이다. 우리나라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참나무류는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등이 있다. 이들은 잘 자라고, 매우 단단하며, 웅장한 숲을 이룬다. 우리나라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나무 중 신갈나무에 대해 알아보자.


신갈나무의 꽃은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봄철 새잎이 나기 전에 줄기 끝에서 길게 늘어진 수꽃 다발이 주렁주렁 달리면, 겨울 동안 굶주렸던 사슴이나 고라니는 영양 풍부한 신갈나무의 수꽃을 먹으며 기운을 회복한다. 꽃잎이 없는 암꽃은 가지 끝에 아주 작게 피어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가을이 되면 암꽃이 피었던 자리에 도토리 열매가 달린다.

신갈나무는 식량을 숲 여기저기 저장하는 다람쥐나 새의 습성을 이용해 씨앗을 퍼트린다. 도토리는 늦은 가을에 여물고, 크기가 크며, 양분이 꽉 차있는 겨울 식량이다. 딱딱한 껍데기에 싸여 있기 때문에 땅속에 오랫동안 저장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다람쥐는 대부분의 도토리를 뿌리가 내리기 쉬운 땅속에 저장한다.


도토리 생산량은 대체로 풍년과 흉년이 주기적으로 번갈아 나타난다.

신기하게도 신갈나무가 도토리 생산량을 조절함에 따라 다람쥐 수도 달라진다.

도토리가 풍년인 해에는 식량이 많아지니 다람쥐들도 새끼를 많이 낳고, 풍년 이후 2~3년간은 도토리가 적게 열리는 흉년이 이어진다. 먹을 것이 줄어드니 다람쥐도 같이 줄어든다. 그리고 다시 도토리 풍년이 오면 혹독한 굶주림을 겪고 살아남은 다람쥐는 다음 흉년을 대비해서 더 많은 도토리를 더 많은 장소에 묻게 된다. 결과적으로 참나무는 도토리 생산량을 조절하여 도토리를 먹이로 하는 동물들의 개체수를 조절한다. 흥미롭게도 같은 숲에서 자라는 다른 참나무들도 같은 시기에 같은 흉년과 풍년을 겪는다. 만약에 다른 신갈나무나 졸참나무가 해마다 번갈아 가며 많은 양의 도토리를 생산하면 다람쥐 수가 계속 늘어나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같다. 도토리가 들판을 내려다보고, 그 해 풍년이 들면 적게 열리고, 흉년이 들면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많이 열린다. 옛날에는 도토리가 구황식품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가을 산길에 떨어진 도토리는 가치 있고, 예쁘고, 엽다.

산에 가면 참나무가 많다. 도토리의 풍년과 흉년을 통하여 동물들의 개체수를 조절하고, 사람에게 곡식이 없을 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자연의 균형 잡힌 순리이다. 참나무가 열매인 도토리를 통하여, 알든 모르든, 세상을 관장하는 일에 일부분일지라도 개입하는 것이다. 흔하고 하찮을지 몰라도, 어찌 보면 참나무는 자연의 법칙을 묵묵히 수행하는 나무임에는 틀림이 없다.


자연은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신비롭다. 흔한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도 나름의 경이로운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나무 하나 풀 한 포기와 다를 바가 없다. 결코, 자연의 법칙에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인간도 자연에 대해서는 그저 순응하며 감사해야 한다.


이렇게 가을 산길에 흔한 도토리를 통하여 하늘 뜻을 하나 슬쩍 엿볼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기적이고 감동이다.


(도토리 자료는 네이버에서)



가을 햇살 좋은 날, 저기 창 넓은 모자를 쓰고 낙엽을 밟으며 가을 속을 걸어가는 여인이 있다. 눈 부시다. 단풍 든 잎을 다 놓지 못한 나무의 그림자가 길게 낙엽 위로 눕는다. 모자의 창이 넓으면 창 그림자도 길고 깊어진다

그래... 내일이 되면 어차피 영원히 사라질 오늘, 이 가을.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흘러도 기억에 가슴에 남아있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 귀하고 고맙다.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아무도 모르게 잊혀 간다는 것, 더러는 남아있는 것의 연속이다.



11월.

늦가을, 결국 붉게 탄다. 나무도 화상을 입는다.

나도 가을 탄다. 나도 가을 화상에 시달린다.

그래도 11월이 좋다.


11월. 허 하다.

아무리 애써 봐야 세상일 중 내 뜻대로 되는 것은 몇 개 없다. 그것도 흔한, 사소한 것들 뿐.

채우려고 정신없이 서성대다가 허기가 지는 공복을 11월에 들어서야 느낀다.

11월이 그렇다. 그래서 11월이 좋다.


11월.

낙엽 구르는 소리가 바람 소리다.

쓸쓸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찬란하지 않는 것도 없다.


늦가을. 11월.

세상은 소금기 없는 가을에 조금씩 절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푹 곰삭어 간다.


익어간다, 세월도.

문득, 긴 겨울잠이 그리워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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