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계족산의 나무들이 꿈꾸듯 서 있다.
大田 鷄足山의 四季
겨울
겨울에는 계족산의 나무들이 꿈꾸듯 서 있다.
십여 년이 더 지난,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때는 매주 계족산에 올랐다. 그러다 보니 계족산 속에 나만의 산길도 몇 개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계절 따라, 매달 바뀌는 계족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한 2년에 걸쳐 변화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글도 얹었다.
이제는 그때의 그 모습을 브런치 스토리에 매달 하나씩, 그대로 풀어놓을 예정이다.
그 당시에는 계족산이 개발이 되지 않아서
허물어진 계족산성鷄足山城과 검버섯이 핀 채로 흩어진 돌들, 산성의 소나무들, 정리되지 않은 산길, 계절마다 피던 풀꽃, 산새, 산 아래 마을들이 지금 모습과는 다르다.
그 후 산성은 새 단장을 하였고, 산성 정상의 소나무들은 베어지고, 주 도로 산길은 깨끗이 정비되었고, 즐겨 찾던 산속 오솔길은 흔적이 지워지고 있었고, 계절 따라 때마다 피던 풀꽃들은 사람을 피하여 더 깊이 숨어들고, 산새는 개체수가 더 늘어난 것 같았고, 마을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어쨌든 당시를 기록해 놓은 모든 게 옛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모습을 기록으로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그때가 새삼 그립다.
일월 山
눈 내린 계족산, 일월山에 올랐다.
길가 나무들은 꿈을 꾸듯 서있다.
산허리를 돌아 날아온 까마귀가 꿈꾸는 나무 위를 지난다.
졸참나무가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눈을 털고 있다.
내내 말 한마디 없어도
먼저 답답해하질 않는다, 산도 나도.
박새무리만 마른 덩굴 속을 뒤지느라 부산하다.
건조한 겨울에는 온종일 몸이 가렵다.
숱 빠진 노인네 머리 같은 겨울 산이 엎드려 등을 긁적인다. 바위는 가려운 곳을 나뭇가지 그림자로 쓸어내린다. 은사시나무는 차가운 바람에 은백색 알몸을 문지른다. 나무속 고요한 곳에서 잠든 애벌레도 가끔 근지러운 몸을 나이테에 비벼댄다.
산비탈의 잘 마른 그늘 아래 잔설殘雪만이 땀을 흘리고 있다. 마른 산속에서는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다.
햇살 좋은 높은 곳에서
바위 위 잘 마른눈을 손으로 쓸어내린 후
젖지 않은 곳에 걸터앉아 남은 차를 마신다.
나무는 겨울에 꿈을 많이 꾼다.
나도 일월山의 겨울나무 곁에 서서 같이 꿈을 꾼다.
혼자 산길을 따라 걷는다. 꿈을 꾸듯이.
산을 내려오는 발자국에는 건조한 겨울먼지가 떠돌다 쌓인다.
마른 나뭇가지에 겨울 산새 앉는 소리가 들린다.
많은 눈이 오고 나서 며칠 서성대다가 산을 찾았다. 나처럼 보고 싶어 참지 못하고 산을 찾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아무도 밟지 않는 좁은 산등성 길을 걷는다. 나무들이 눈 속에 발을 담그고 묵언수행黙言修行을 하고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공중부양을 하는 나무도 보인다. ‘후드득’ 소리에 뒤돌아본다. 나무들이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있다. 나도 서서 내게로 떨어진 눈을 턴다, 나무같이 눈 속에 발을 깊이 담그고.
산속 눈의 결계지結界地에 갇혀 나무도 나도 서있다. 이곳에서는 버릴 것도, 채울 것도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질없는 상념想念 만 이어졌다 끊어졌다 한다. 산을 넘는 까마귀의 울음소리에 꿈에서 깨어난다. 몸을 추스르고 걷는다. 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다시 걷는다.
山城에 올랐다. 정상 넓은 분지에 서 있는 소나무들이 눈부신 햇살을 즐기고 있다. 그 주위를 돌면서 변화하는 자유로운 모습을 눈에 담는다. 산성 돌길을 따라 내려간다. 눈은 돌 위에서 습기 없이 잘 마르고 있다. 멀리 눈에 파묻혀 잠든 산디마을이 보인다. 마른풀들이 편한 자세로 따뜻한 눈을 푹 뒤집어쓰고 있다. 산성아래 나무들도, 건너편 산도 가까이 다가선다. 귀가 멍하니 일체 소리는 없다. 환한 눈부심 속에도 깊은 적막이 있다. 일월山에서는 見보다 觀이다.
눈이 내리는 것은 하늘이 그물로 가두고자 함이다. 겨울 산이 편히 쉴 수 있게, 그 속에 있는 것들도 같이. 나 같은 것도.
산은, 눈 덮인 일월의 산은 꿈을 꾸고 있다. 영원히 깨지 않을 것 같은 꿈을 꾸고 있다.
길을 막고 서 있는 너는 누구니. 나, 지나가도 되니.
다행히 승인을 받았다. ‘통과’
산성에 쌓아놓은 돌 위에서는 눈이 예쁘게도 녹고 있다.
너는 누구니.
어느 별에서 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