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때, 한 번쯤은 밖으로 나서 보아도 괜찮다
이제는 완전히 겨울 속에 들어섰다.
虛虛, 내려앉은 잿빛 하늘, 빈 들판, 비어 있는 연보랏빛 산,
시리도록 찬 바람,
마른 덤불에 분주히 오가는 박새 무리,
산자락 걸으면 바스락 대는 소리...
겨울은 이런 풍경이 좋다.
이런 겨울이 좋다.
겨울 아침. 밖을 나섰다.
차갑다. 입에는 하얀 입김이 호호 나온다.
겨울 논은 텅 비어 있다. 아니, 자세히 보면 뭔가가 남아 있다.
겨울 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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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을 따라 걸으면 산자락과 만난다. 마른풀들이 덤블과 서로 뒤엉켜 있다. 겨울 새들의 놀이터다.
거미가 지난해 펼쳐놓은 거미줄을 겨울 햇살에 넓게 펼쳐놓고 그물 말리듯 말린다.
이 추운 겨울에 어떤 날벌레가 살아남았을까. 봄에 보수만 하면 다시 쓸 수 있으니 관리하는 것일까.
궁금하여 찾아보니 대부분의 거미는 겨울에 성체는 죽고 알주머니 속의 알 상태로 월동하고, 일부 배회성 거미들은 성체로 월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겨울잠 자는 물거미도 있다. 거미의 알주머니는 추위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미줄을 사용해서 알주머니를 만든다.
거미줄은 하늘 그물보다 촘촘하나 바람도 가두는 하늘 그물같이 모든 것을 품을 수는 없다.
겨울치고는 포근한 아침이라서 그런지 거미줄에 이슬이 달려있다. 물방울 하나가 줄에서 사다리 타기 놀이한다. 사다리 타기 놀이의 끝은 항상 중앙 한 곳이다. 고운땅거미 한 마리가 가장자리로 비켜서서 여덟 개의 눈으로 움직이는 물방울을 지켜본다.
바람이 걸림 없이 거미줄을 지나면, 거미줄에 걸린 모든 겨울 부스러기들이 같이 흔들린다. 거미줄에 매달아 둔 호랑거미 알집도 흔들린다. 흔들리는 거미줄을 쳐다보는 깡충거미는 배가 고프나 심심하지는 않다.
이런 속담이 있다. 아침에 보이는 거미줄에 이슬이 맺히면 날이 맑다. 그리고 거미는 그 이슬을 먹고 목마름을 해결한다.
염낭거미 이야기도 있다.
수거미가 은밀히 오다. 사랑 나누다. 알을 낳는다. 염낭거미는 새끼에게 제 몸을 먹이로 내어주다 죽는다. 세상 어디에나 위대하지 않은 모성애는 없으나, 새끼에게 자기 몸까지 내어주는 모성애는 더 위대하다.
산자락을 조금 오르니 응달진 비탈에는 지난번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다. 쌓인 눈이 녹을만하면 또 눈이 내려 덮이겠지. 아마 산자락 응달에서는 겨울 내내 눈을 펴놓고 말리고 젖고 또, 말릴 것이다.
눈 오는 날, 거지가 빨래했다고 한다.
눈이 오려면 구름이 있어야 하고 구름이 생성되려면 수증기가 응결해야 한다. 수증기가 응결할 때는 물이 증발할 때 빼앗은 열이 방출된다. 따라서 찬바람이 부는 맑은 날보다 눈 오는 날이 더 포근하기 때문에 개울에서 빨래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연을 알면 이런 거지 생활에 요령도 생긴다.
오후.
아침에 산자락에서 쉴 때, 목도리를 나무에 걸어두고 그냥 왔다.
발그림자 보고 대신 산에 좀 갖다 오라 해도 움직이질 않는다.
답답한 내가 사립문을 나서면 용케 잘 따라온다.
그런 그림자 보고
나 대신 살아라, 나 대신 사랑해라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나만 따라다닌다.
지난주에 친구들과 공주에서 만났다.
커피 한잔할 때, 눈이 내렸다. 밖을 나오니 눈보라로 변했다. 친구들과 헤어졌다.
차창에 부딪히는 눈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주 고마나루 솔숲이 생각났다. 지난해 겨울눈이 많이 내렸을 때, 눈 덮인 솔숲이 보고 싶어 공주 고마나루 솔숲으로 달려갔던 게 생각이 났다.
솔숲으로 방향을 틀었다. 잊을 뻔했다.
도착하니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고마나루 솔숲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진다.
솔숲을 나와 차에 올랐다.
누군가가 그리워 질 때이다.
이런 겨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