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은 겨울 속에 들어있으나, 일탈逸脫을 꿈꾸는 달이다.
겨울의 결벽증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드름도, 나뭇가지 위 산새도, 들판도, 산등성이 나무도... 겨울에는 모든 것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겨울은 모든 것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정돈하는 것에 집착한다. 세상사도 좀 흐트러진들 큰일이 아닌데...
겨울은 내내 집착한다. 결벽증도 병이다.
늙은 나무가 보내온 겨울소식
냉증으로 항상 줄기가 시리다.
바람만 불어도 줄기 꺾이는 관절에는 오십견 같이 아려온다.
줄기 사이에 머문 찬바람은 되돌아가는 길을 잃은 지 오래다.
응달진 곳 뿌리에는 티눈이 굳어진다.
이제는 눈의 무게에도 가지는 버티기가 힘들다.
지난번 큰 눈에 꺾인 가지 혹에서는 진물이 배어 나온다.
건조한 날에는 한가하게 겉껍질의 각질층을 벗겨내다.
줄기에는 나이테가 꽉 차서 이제는 하나 더 새기는 것도 힘겹다.
건너편 어린 나무가 힘들어할 때마다 거친 가지로 토닥거려 준다.
밤마다 쇠기침 소리를 바람 속으로 흘려보낸다.
등고선 같은 바람의 지문이 마른 가지에 흔적같이 굳어져간다.
나의 회신 :
우리는 해마다 같은 말을 한다. 나의 겨울도, 너의 겨울도 참 길다.
며칠 전부터 네 뿌리에서부터 간지럽지. 내 몸에서도 발 끝부터 연두색 종기가 맺히고 있다.
조금만 기다리자.
조급해하지 말자.
봄은 온다, 우연같이.
겨울 이때쯤 산자락을 걷다 보면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산길에서 덤불이 부산스러우면 박새 무리가 먹이를 찾으며 놀고 있는 것이다. 박새가 인기척에 경계하지 않도록, 우리는 자연의 규칙만 잘 지키면 된다. 보고 싶으면 몇 걸음 더 가서 뒤돌아보면 된다.
세상일도 마찬가지다. 인간사도 규칙만 잘 지키면 된다. 기준은 자연의 규칙이다.
겨울에는 이런 규칙들이 더 잘 보인다.
겨울바람에
꽃꽂이 버티다가 날아 뒹구는 마른풀줄기.
겨울눈에
꽃꽂이 버티다가 꺾이는 나뭇가지.
모른다. 그만큼 겪어도 모른다.
숙이는 법도 모르고, 버티는 법도 모른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세상사가 그러하듯,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가까워지려 하면 더 멀어지고
잊으려 하면 오히려 더 생각나는 법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다가가는 법도 모르고, 잊는 법도 모른다.
이월二月.
일 년 모든 달이 30일 꽉 차거나 넘치는데, 이월만 조금 비어있다.
이월같이 조금 모자라는 것, 비어 있는 것이 좋다.
왜 비워있을까.
8월이 하루를 빼앗아갔어도 둘이 모자란다. 채우려고 4년마다 윤년으로 채워도 하루가 모자란다.
아마도, 춘삼월 봄을 조금이라도 빨리 맞이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이월 하순에 들어서면 더하다. 서두른다. 모든 뿌리들이 땅 거죽을 밀어낸다. 그때는 세상이 땅에서 조금씩 뜬다. 지구별 부피가 부풀어 오른다.
그래도 달력은 여전히 이월에 머물러 있다.
이월도 여느 겨울처럼 종일 꿈만 꾸고 있다.
어찌 보면, 채운 다른 달들과는 다르게 모자라는 이월은 일탈逸脫을 꿈꾸는 달이다.
겨울 시작부터 안으로만 파고들다가, 이제는 밖이 궁금할 때이다. 그래서 이월은 자주 일탈逸脫을 꿈꾼다.
逸은 '편안할 일'이라는 한자로, '편안하다', '달아나다', '잃다'를 뜻하며, 脫은 벗을 탈, 기뻐할 태, 허물 벗을 열을 뜻한다. 일탈은 '벗나가고 벗어남'을 뜻한다.
이월에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인데 양력으로 잘못 알고
동안거冬安居가 끝났다고 만행萬行을 떠난 젊은 수행자들아,
입춘立春이 지나고 며칠 날이 풀리니 봄이라 착각하여
겨울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오는 어린것들아,
아직은 때가 아니다.
속히 돌아와라, 각자 자리인 안거처로, 겨울 잠자리로.
찾으러 다니기 귀찮다. 스스로 돌아오라.
萬行 (만행)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닦는 수행”을 의미하며. 수행자는 고정된 사찰에 머물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명상·사유를 쌓으며 깨달음을 추구한다. 안거(期間) 해제 후 “만행에 들어간다”는 표현은 바로 이 의미를 가리킨다. 불교에서의 행각行脚도 같은 의미다. (네이버에서)
이월.
일탈逸脫을 꿈꾸는 달,
이월은 여전히 꿈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蛇足뱀발
어디를 보니 일탈은 탈선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고 되어 있다.
가끔 소문에서 들리는 그 탈선이 맞다.
걱정이다.
일탈을 꿈꾸다가 자리에서 튀어나올까 봐 걱정이다.
동안거에 든 수행자나 겨울잠에 든 겨울잠 자는 것들아, 이월에도 계속 정진하고 잠만 자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밖으로 나오지 마라.
이월에도 잠만 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