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옆 사립문, 빨간 우편함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 여자
아침, 산새 소리에 잠이 깨어 여닫이문을 열고 나왔어요. 지난밤 우우 우는 겨울바람 소리 들으며 잠들었는데, 오늘은 아침 햇살이 환하게 세상을 밝히네요. 툇마루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따뜻한 보리차 한 잔 마셨어요.
마당 구석에서는 탱구가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네요. 참, 말씀을 안 드렸는데 식구가 늘었어요. 지난 읍내 우체국에 갔을 때, 장이 섰어요. 쌍촌리 복희 할머니가 산나물을 캐서 팔길래 조금 샀어요. 옆에 보니 주둥이 새카만 강아지 다섯 마리가 광주리에 담겨 있었어요. 귀엽고 예뻐서 쓰다듬으니, 할머니가 키우라고 억지로 한 마리를 주셨어요. 집으로 데려올 때 낑낑대다가 잘 잤어요. 예전에 당신을 졸졸 따라다니든 아랫마을 탱구가 생각나서 ‘탱구’라고 이름을 불러주었어요. 지금 탱구의 일상은 세상 호기심과 탐험으로 무척 비빠요. 찾으러 다녀야 해요. 저도 탱구처럼 세상이 호기심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어요. 아마, 당신도 탱구를 이뻐할 거예요. 혹시 모르니, 다음에 오시면 우편함 옆에 '맹견조심' '개조심' 푯말 세워 주세요.
잘 지내시죠?
겨울에는 앞산의 모습이 잘 보여요. 겨울 산등성이 따라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와요. 보고만 있어도 좋아요.
처마 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굵은 고드름은 헛간 지게다리만 했어요. 고드름이 가지런히 매달려 녹고 있어요.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 아래 마당에 작은 홈을 파며 고였어요. 지붕을 타고 내려온 물방울도 고드름을 주르륵 타고 바닥 홈으로 떨어졌어요. 녹고 있던 고드름들은 순서 없이 하나 둘 마당에 떨어졌어요. 햇살이, 물방울이 고드름 겨드랑이를 간지럽혀서 그런가 봐요. 저도 간지럼은 못 참는 것 아시지요. 한참을 고드름이 녹는 것, 떨어지는 것을 보며 멍하니 있었어요. 겨울 햇살에 마당 가장자리는 그렇게 젖고 있었어요.
근처에서 뛰놀던 탱구, 온몸에 묻은 흙과 지푸라기 때문에 다른 강아지로 변신한 탱구가 배고프다고 보채서 부엌으로 갔어요. 사실 나도 배가 고팠거든요. 사다 놓은 산나물을 무쳐 점심 먹었어요. 내일은 집 뒤, 양지바른 언덕에 냉이 캐러 갈까 봐요.
아침에 보니, 돌담 옆 사립문에 만들어 놓은 빨간 우편함에 편지가 들어 있었어요. 지난번 우편함은 곤줄박이가 알을 낳아서 그때 새로 만든 우편함인데, 이번에는 박새가 둥지를 틀었어요. 우편함 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박새가 나들이 갔는지 빈 둥지만 보여서 편지만 살짝 꺼냈어요. 친구 영희한테 온 편지였어요.
나흘 전, 장독대의 눈이 다 녹은 날, 일찍 읍내로 내려갔어요.
읍내 볼일을 다 보고 나서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들렀어요. 지난가을, 우체국 계단에 놓였던 국화 화분은 마르고 있었어요.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책상에서 입김을 호호 불며 우표를 붙였어요. 우표 붙인 편지를 들고 나와 우체국 앞 빨간 우체통에 넣었어요.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 들었어요. 난 우체국 직원에게 편지를 부치는 것보다 우체통에 직접 넣는 것이 좋아서 항상 이렇게 해요.
그날 시간이 남아서, 아랫마을 봉화 이모네에 들렀어요. 이레 전에 태어난 송아지 보고 왔어요. 잘 걷지는 못해도 두 눈은 크고 맑았어요. 너무 예뻐서 송아지의 눈에 내 모습 남겼어요.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하다가 이모가 지난가을에 담근 국화주를 권하길래 한 잔 마셨어요. 집에 가려고 일어서서 걷는데, 땅이 아니고 하늘 위를 걸었어요. 이모가 다리가 풀렸다며 눈 좀 붙이고 가라 해서 따뜻한 아랫목에서 잠시 꽃잠 잤어요.
돌아오는 길에 노루 재 너머 황룡산 산자락 작은 절, 연주사戀主寺에 들렀어요. 기억나시죠, 연주사戀主寺, 지난번에 당신이 집에 왔을 때 같이 간 절. 산모퉁이 돌아 있는 조그마한 칠성각에 들러 소원을 빌었어요.
당신 항상 건강하기를, 그리고 우리...
편지를 쓰면, 이렇게 제 얘기만 횡설수설하니 끝마칠 때는 항상 아쉬워요. 저의 끝마침은 이래요. 여전히, 만난 뒤 헤어짐같이 항상 서툴러요. 그렇게 끝마침 연습을 많이 해도 마찬가지네요.
잘 계세요.
花.
그 남자
새들이 우편함을 좋아하는 걸 보니 세상 소식이 궁금한가 보네.
이번 공사가 끝나면 봄이 오기 전에 집에 들를 수 있을 거 외다.
새 식구 탱구가 보고 싶네. 다음에 집에 갈 때는 읍내 푸줏간에 들러 고기 뼈도 좀 얻어다 가야겠다.
달래된장국이 먹고 싶다.
저녁을 먹으면 항상 근처 강가를 걷는다, 당신 생각하면서.
아직도 두근거리는 것은 그리워한다는 것... 맞지.
멀리 가로등 불빛이 강가로 내려와 발을 담근 채 흔들리고 있다, 당신을 그리는 나처럼.
난 우편함 박새가 이 편지를 열어 볼까 궁금하네.
건강하게 잘 지내요.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