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하는 사람에게라도

상처를 털어놓고 싶었다

by 연필심

[중대장과의 관계]

중대장과의 면담을 이야기하기 전

중대장과 내가 있었던 일을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자대 전입이 되자마자 해안 경계 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나는 부상으로,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으며 임무를 수행하였다.


해안 경계 작전이 끝날 무렵,

우리 중대는 FEBA 지역(이해를 돕기 위해 ‘내륙’으로 지칭하겠다)으로 철수를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내륙 철수 인원과 해안 잔류 인원 희망자를 조사하였다.


나는 내륙 철수를 희망하였다.


내륙 철수 전 날, 중대장은 나를 따로 불렀다.

중대장은 내륙 철수 인원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입장이었고, 내가 해안에 잔류하도록 압박하였다.

결국 난 해안에 잔류하기로 결정되었다.


중대장 입장에서 다리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있던 나는 신경 쓰기 싫은 부하였던 것이다.


해안 경계 작전에 투입되어 임무 수행을 하던 첫날, 갑자기 중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중대장은 다시 나를 본인이 이끄는 내륙으로 데려오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해안 경계 작전 담당 중대장이, 나의 중대장에게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다리 다친 애를 왜 우리 중대에 버리고 가냐? 얘 신경 쓰기 싫다. 너네 중대 병사 다시 데려가라.”


이렇듯 중대장은 나를 해안 경계 중대에 버리려 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중대장을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불신했던 중대장한테라도]

다시 내용으로 돌아오면


중대장과의 면담에서, 그는 내게 당일 울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때 있었던 학교폭력 사건을 말하였다.


당시 나는 군대에서 내 속마음을 말할 사람도 없었고

그렇기에 특히 나의 상처, 트라우마를 꺼낼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가 중대장에게, 나를 버리려고 했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에게라도 털어놓았다.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중대장에게 고마움도 느꼈다.

불신하는 중대장한테라도 고등학교 학교폭력 사건을 털어놓을 정도로

그 당시 나는 정말 취약하고 힘든 상태였다.



상처, 트라우마는 신뢰하는 사람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다.

그리고 상담사 같은 전문가나 본인이 신뢰하는 주변인에게 털어놓아야 안전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누구한테라도 발설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가 날 집어삼키는 느낌이었다.


나의 통제력을 벗어났던 순간이었고,

청자가 누구든 내 상처를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keyword
이전 09화예상치 못한 시공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