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시공간에서

3년 전의 학교폭력

by 연필심


“죽을 거면 말하고 죽어라”


타 중대 한 병사가 액체 세제를 마시며 자살 기도하였다.

사건 발생 후 중대장이 병사들을 집합시켰다. 그리고 위같이 비아냥댔다.



중대장의 집합 며칠 후, 부대대장이 중대로 방문해 병사들을 모아 놓고 설문조사를 하였다.

설문지에는 자살 기도 사건과 관련해, 해당 인원을 비아냥대는 간부를 적으라는 식의 질문이 있었다.


얼마 전 있었던 중대장의 발언을 듣고 한 병사가 대대장에게,

중대장을 신고해서 그런 문항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였다.

또 이외 간부들의 욕설, 부당한 명령 등의 부조리를 적으라는 문항도 있었다.


설문 조사 며칠 후, 다시 부대대장이 중대로 방문하여 중대 인원들을 집합시켰다.

설문조사에서 부조리가 식별된 중대 간부들을 병사들 앞에서 사과하도록 시켰다.


이 중, 중대장의 태도는 다음과 같았다.

건들건들거리면서 웃으며 등장하였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번 기회를 통해 더욱 가까워진 것 같다 그치?”

사과는 없었다.

반성의 태도도 없었다.


얼마 후, 다시 부대대장이 중대 막사로 방문하였다.

중대 내부의 한 병사가, 사과하지 않고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중대장을,

대대장에게 다시 신고했기 때문이다.


중대장이 다시 병사들 앞에 등장하였고 이번에는 본인의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하였다.



[고등학교 학폭 트라우마가 떠오르다]

중대장의 사과가 있었던 당일 취침 시간,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갑자기 분노와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고등학교 때의 학교폭력 사건이 떠오른 것이었다.

(‘가해자들에게 사과하다’ 편에 그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다.)


고3 때 나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에게 사과를 받지 못하였다.

오히려 가해자들에게 사과를 하였다.


해당 병사는 결국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피해자인 내가 사과를 하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중대장을 익명으로 신고했던 병사가 부러웠다. 사과를 받았으니까.

그리고 그 병사와는 달리 정당한 권리를 찾지 못했던 내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끈질기게 사과를 받아낸 그 병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과를 제대로 안 했을 시, 혹은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등

사과받는 사람이 판단했을 때 사과를 받고 싶지 않은 경우,

반드시 사과받아야 하는 의무는 없다.


사과를 받을지 말지는 사과받는 사람의 ‘고유의 권한’이다.

그리고 그 권한은 제삼자에 의해 침해될 수 없는 ‘불가침의 권한’이다.


이런 당연한 권리조차 못 챙기고 살았던 나 자신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날 밤, 모포를 뒤집어쓰고 숨죽여 울었다.



얼마 후 주말 오전, 세면장에서 양치를 하는데 위 기억과 감정이 휘몰아쳤다.

눈물이 나왔고 그대로 세면장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당일 저녁, 중대장은 무슨 일이냐며 나를 중대장실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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